연재 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70

플라스틱은 물고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수중의 환경호르몬
김범철, 강원대학교 환경학부 명예교수·‌전 한국하천호수학회장

20년 전 우리나라 아기용 젖병이 플라스틱병에서 유리병으로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필자와 같은 학과에 근무하는 환경화학 전공 교수가 플라스틱 용기에서 인간의 호르몬의 기능을 방해하는 유해물질이 우러나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고 이것이 매스컴에 보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대표적인 물질이 비스페놀-A 라는 것인데 플라스틱을 만드는 원료이므로 플라스틱 용기에 포함되어 있다가 서서히 용출되어 사람의 식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노닐페놀, 프탈레이트 등 여러 종류의 유해한 유기물질이 플라스틱에서 용출되는데 플라스틱의 제조 원료이거나 가소성, 접착성을 높이기 위해 보조적으로 첨가되는 물질들이다.
이 첨가물들은 식품 포장용기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었는데 플라스틱에서 우러나오는 유기물이 미량이므로 그 위해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절에는 그 보다 더 심한 유해물질들이 흔하다 보니 미량 유해물질에까지 관심을 두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환경호르몬의 유해성 

플라스틱에서 용출되는 비스페놀-A의 유해성은 분자구조가 동물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과 유사하여서 발생하는 것이다. 호르몬이란 체내의 어느 한 기관에서 다른 기관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물질이다. 체내의 메시지 전달방법은 신경과 호르몬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경이 전기신호로 전달하는 것이라면 호르몬은 물질을 메신저로 보내는 전달방법인 것이다. 호르몬은 특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분자이므로 이를 받아들이는 기관에서는 이 구조를 인식하는 분자가 존재하여 신호를 인식한다. 그런데 비스페놀-A는 분자구조의 끝부분이 여성호르몬과 유사하여 체내 기관이 이 분자를 호르몬으로 오인하여 생리작용에 변화를 일으키는 피해가 발생한다.
이렇게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호르몬의 기능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분비계교란물질’이라고 부르는데 흔히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호르몬은 극히 미량만으로도 생리활동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므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유해물질 보다 훨씬 더 낮은 농도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과거에 단기간 조사에서는 유해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 물질이 나중에 장기적 연구에 의해 유해한 것으로 판정되는 사례들이 많다. 인체에서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이 밝혀지다 보니 수중의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도 밝혀지게 되었는데 비스페놀-A의 경우도 수중동물의 생리활동에 장애를 주어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중동물에 피해를 주는 환경호르몬으로서 가장 흔하고 일찍이 피해가 밝혀진 것은 아마 유기주석류일 것이다. 트리부틸주석(tributyl tin)이라는 물질이 대표적인데 흔히 TBT라고 부른다. 이 물질은 동물에 대한 독성이 있으므로 선박의 방오도료에 사용되었다. 선박의 물에 잠기는 부분에는 따개비 등의 생물이 부착하여 부식시키고 무게를 증가시키고 속도를 느리게 하는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이를 막기 위해 유독성물질을 함유한 페인트를 개발하여 생물이 부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선박의 바닥에 주로 사용하였고 어망 등의 다양한 수중 구조물에도 사용하였다.

어류, 양서류 등 하등동물의 성비에 영향 
초기에는 TBT는 물속에 일부가 용출되더라도 농도가 낮으므로 독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후 연구에서 동물이 죽지 않는 낮은 농도이더라도 동물의 생식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주어 동물의 성비가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져 해양학계에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바다의 고둥 등 복족류 동물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험에서 TBT는 수컷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렇게 생식능력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임포섹스(imposex)라는 용어로 부르게 되었다. 한편 깔따구 유생으로 조사한 결과는 10ng/L 의 농도에서는 암컷이 55.6%이었는데 100ng/L의 농도에서는 85.7%로 증가하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암컷이 증가한 것이다. 방오도료의 미량 용출이 급성독성은 없지만 만성적인 위해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TBT를 환경에 유해한 물질로 판정하고 많은 선진국에서는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포유류 동물은 출생 시에 암수가 결정되어 일생 동안 변하지 않지만 어류, 양서류, 등의 하등동물에서는 출생 후 암수가 바뀌거나 뒤늦게 결정되는 사례들이 있고, 무척추동물에서는 심지어 암수한몸(자웅동체)인 경우도 많다. 붕어의 예를 들면 치어일 때는 70%가 수컷인데 성체가 되면 수컷의 비율이 10%로 감소한다. 동물의 암수가 결정되는 요인으로는 온도, pH, 일조량, 영양상태, 기생충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환경호르몬도 성비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요즘은 플라스틱 용기를 보면 ‘비스페놀-A free’라는 표시를 자주 볼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 적게 발생하는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종류의 합성물질이 있고 자연물질 가운데에도 유해한 것들이 많으므로 한두 종류의 환경호르몬을 제거했다고 해서 완전히 청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물질일지라도 언제 또 유해하다고 밝혀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선박에 따개비가 부착한 모습(사진 ASBMB Today)

▲선박 하부. 생물부착을 막기 위해 방오도료를 바른다(사진 Wikipedia)

▲고둥. 환경호르몬 TBT는 고둥 등 수중 하등동물의 암수 성비를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