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의 봄1- 출포리
보트낚시 聖地에 왕떡 대행진
ㅣ허만갑 기자ㅣ
대호 최상류의 출포리(충남 당진군 대호지면)는 보트낚시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무려 수만평의 수초군락을 자랑하는, 870만평의 대호에서 가장 광대한 수초대가 형성된 이곳에 매년 4월이면 알을 잔뜩 실은 대물붕어들과 그들을 쫓는 보트낚시인들이 총집결한다. 100여 척의 보트가 한꺼번에 몰려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수초나라’ 출포리는 산란기 붕어의 씨알도 가장 굵다. 올해는 토종붕어의 본격 입질이 전개되기 전 5짜에 육박하는 떡붕어들이 출현하면서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 출포리 배터에서 보트를 펴고 있는 낚시인들.
출포리는 ‘프라이팬’으로 불리는 괴물 붕어가 출몰하기로 유명하다. 프라이팬은 대호에서만 볼 수 있는 45~50cm급의 기형 혹부리붕어를 일컫는 말이다. 그 체고가 정말 프라이팬만큼 넓어 경탄을 자아낸다. 나는 대호 프라이팬을 실물로 보지는 못했으나 핸드폰 사진으로는 보았다. 5짜 떡붕어보다 넓은 괴기스러운 체형에 깜짝 놀랐다.
사실 나에게 대호는 끌리는 낚시터가 아니다. 너무도 지루한 입질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작년 4월 17~18일에 나는 출포리에서 30시간 동안 보트낚시를 해서 떡붕어 한 마리를 낚았다(씨알은 40cm급으로 굵었다). 만정이 떨어진 나는 두 번 다시 대호는 찾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만 ‘프라이팬’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지난 4월 2일 나는 다시 출포리를 찾았다. 이 날 FTV ‘비바보트’ 진행자인 박현철씨의 팬클럽 ‘팀비바’ 시조회도 출포리에서 열렸다. 팀비바 회원들 외에도 입큰붕어 보트교실 회원들을 포함해 40척의 보트가 떴는데 예상대로 마릿수는 없었다. 나는 여기서 ‘켈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5짜조사 홍승만씨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홍승만씨는 2007년 8월과 10월에 고흥 세동지에서 5짜붕어를 3마리나 낚아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낚시인이다. 대물조사답게 여기서도 4짜 토종붕어와 5짜에 가까운 떡붕어를 낚아두고 있었다. 또 2009년 낚시춘추 붕어 최대어상을 수상한 권영환(닉네임 요천강)씨도 만났다. 권영환씨는 2009년 5월 6일 세동지에서 52.5cm 붕어를 낚아 그해 최대어상을 거머쥐었다. 이런 꾼들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4월의 출포리는 명실상부한 대물의 현장, 기록도전의 무대인 것이다.
▲ 박현철씨가 47cm 떡붕어를 끌어내는 연속동작.
괴물 ‘프라이팬’을 쫓는 꾼들의 행렬
작년과 비교할 때 출포리는 물색은 좋아졌으나 수위는 70cm 정도 낮아진 상태였다. 저수위는 스윙낚시를 위주로 하는 연안낚시엔 호조건일지 몰라도 수초직공낚시를 위주로 하는 보트낚시엔 악조건이다. 수초대는 모조리 땅위에 드러나 있었고 수초 외곽의 수심도 20~40cm에 불과했다. 그중 용케 60~70cm 수심대를 형성한 수초 무더기를 찾으면 입질을 받는 상황이었다. 포인트가 축소돼 낚시자리를 다퉈야 했다.
그래도 매사에 긍정적인 박현철씨는 ‘오히려 더 나은 조건’이라고 했다. “붕어들이 수초 외곽을 끼고 몰려다니니까 연달아 서너 마리씩 낚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수초대에 물이 차서 붕어들이 넓은 수초대로 파고들면 어군이 분산돼 많이 낚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보다 20cm만 더 불면 딱 좋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한다. 알을 품은 붕어들이 수초대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며 본격적인 산란입질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보다 대호의 봄 조황이 늦는 것은 이 저수위 때문이다.
어쨌든 물은 조금씩 불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 대형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분위기다. 우리가 출포리를 찾기 이틀 전인 3월 31일엔 마릿수 입질이 전개돼 혼자 대여섯 마리씩 낚은 꾼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대호 붕어는 걸면 90% 월척이고 4짜의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 ‘한 방’을 노리고 낚시인들이 찾는 것이다.
▲ 직공채비로 갈대 언저리를 노리기 위해 조용히 접근하는 보트.
▲ 2009년 붕어 최대어상을 수상한 대물꾼 권영환씨가 지렁이에 걸려든 4짜 떡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예년에 없던 저수위 “조금이라도 깊은 수초대를 찾아라”
출포리 배터에서 보트를 펴고 건너편 수초대로 들어갔다. 물이 빠져 1~1.2m 수심으로 얕아진 물골 좌우로 줄풀과 부들, 갈대가 황량하게 드러나 있다. 작년 이맘때 보트를 타고 누비던 수초대는 땅이 되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보트꾼들은 모두 물골에 인접한 수초대 언저리를 노리고 있었다. 수초 언저리 수심은 겨우 60~70cm. 물골을 끼고 회유하던 붕어들이 먹이활동을 할 때 올라탈 수 있는 위치다. 물론 깊은 물골을 노려선 입질을 받을 수 없다. 문제는 60cm 이상의 수초대 폭이 얇아서 마릿수 입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권영환씨가 물골 옆의 갈대 외곽에서 9치 붕어를 낚아내기에 그 옆에 보트를 세웠다. 직공채비를 갈대 쪽으로 바짝 붙이니 50~60cm, 약간 떨어뜨린 맨바닥은 70-80cm로 깊어지는 지형이다. 오히려 보트를 멀찌감치 물려놓고 스윙낚시로 노리면 더 좋을 법한 곳이었다.
부들밭 안쪽으로 들어갔던 박현철씨는 입질이 없는지 물골로 다시 나와 내 옆에 보트를 붙였다. 오후 6시, “푸당탕” 물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박현철씨의 낚싯대에 큰놈이 걸렸다. 수초에서 뛰쳐나온 붕어는 깊은 물골로 도주하였고 그 바람에 박현철씨는 보트 뒤로 돌아간 낚싯대를 당겨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참 날뛰다가 뜰채에 포박된 녀석은 45cm가 훌쩍 넘는 떡붕어였다. 배가 터질 듯한 징그러운 녀석이다.
▲ "이 녀석들 덩치 좀 봐주세요. 우람하다 못해 징그럽습니다." 45, 47cm 떡붕어를 들어 보이는 박현철씨. 글루텐과 지렁이로 한 마리씩 낚았다.
출포리가 수초낚시의 메카로 불리는 이유
10여분 후 내게도 입질이 왔다. 찌가 흔들흔들하더니 서서히 솟기 시작한다. 두 마디쯤 솟았을 때 참지 못하고 챔질하니 육중한 무게감이 내 어깨를 흔든다. 그러나 이 녀석도 떡이었다. 씨알은 40cm급. 덩치에서 나오는 파워가 상당했지만 스피드는 토종붕어에 미치지 못했다. 그것으로 입질은 끝났다.
대호 붕어낚시는 대물낚시의 전형이다. 1박2일에 한 마리 낚으면 다행이요 두 마리 낚으면 성공이지만 걸면 대부분 월척이다. 입질시간대는 아침과 해거름이다. 케미라이트를 꽂지 않아도 찌가 보일 때부터 입질이 시작되어 역시 케미를 꽂지 않아도 찌가 보일 때까지 낚인다. 그래서 늘 밤이 오면 케미를 부러뜨릴까 말까 고민한다. 간혹 밤 11시까지는 한두 번의 붕어 입질이 받힐 때가 있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밤낚시도 해보지만 밤낚시는 거의 안 된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가 낚시시간대다. 입질이 뜸하다고 해서 포인트를 자주 옮겨선 안 된다. 오전엔 두 군데 정도 이동하며 노려보고 오후엔 한 곳만 정해서 승부를 봐야 한다.
미끼는 지렁이와 글루텐떡밥을 쓴다. 낮에는 지렁이, 밤에는 떡밥이 유리한데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통상 토종붕어는 지렁이에, 떡붕어는 글루텐에 잘 낚이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떡붕어도 지렁이에 잘 낚이고 토종붕어도 글루텐에 잘 낚인다. 떡밥을 쓴다고 해서 예민한 채비로 바꿀 필요는 없다. 보트낚시인들은 고부력찌 직공채비의 감성돔 5호 바늘에 글루텐을 대추알 만하게 뭉쳐서 다는데, 월척이 넘으면 떡붕어든 토종붕어든 그 큰 입으로 한번에 삼켜서 찌를 몸통까지 밀어 올린다.
채비는 강하게 써야 한다. 5짜에 육박하는 대물이 수초대로 파고들 땐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이기 때문에 완강하게 강제집행할 수 있는 채비가 필요하다. 수초직공채비의 경우 보통 원줄 6~7호, 목줄 5호, 감성돔바늘 5호를 쓰는데 더 강한 채비를 쓰는 이들도 있다.
▲ 출포리의 대물꾼 부자. '5짜의 사나이' 홍승만(켈러)씨는 아들 홍의화와 함께 보트낚시를 해서 4짜 토종붕어와 5짜에 육박하는 떡붕어를 낚았다.
출포리 붕어들은 보트에 민감하다. 항상 많은 보트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 산란철엔 온 수초대가 일렁일 정도로 많은 붕어들이 몰려드는데도 입질은 뜸한 것도 그런 피싱프레셔 때문이다. 따라서 대호에서 다수확을 거두는 비결은 손 타지 않은 생자리 수초대를 찾는 것이다. 물론 출포리에서 그런 곳은 거의 없다. 눈으로 봐서 탐나는 명당은 이미 여러 척의 보트가 왔다 간 자리라고 보면 된다. 차라리 작업을 하지 않고선 공략하기 힘든 생자리 수초대가 나을 수 있다.
박현철씨는 낚시인들이 다 철수한 일요일 오후까지 남아서 낚시했다. 그는 연안과 가까운 물골 옆의 외진 부들수초대를 찾아서 오후 6시경에 34cm, 29cm 토종붕어와 47cm 떡붕어를 연거푸 뽑았다. 경기 종료 직전에 집중타를 날린 것이다. “부들 새순이 막 올라와서 그곳이 부들밭인 것을 알았다. 새순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박현철씨 바로 옆에도 보트가 있었지만 거기선 입질이 없었다. 박현철씨의 보트는 물골에서 수초대로 들어오는 물길을 틔워놓고 후방에서 노렸지만 먼저 들어간 보트는 물골을 가로막고 수초대를 노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똑같은 수초대를 노리더라도 보트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보트낚시, 특히 수초낚시의 노하우를 익히는 데 출포리만한 곳은 없다. 수초대가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포인트가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초대 공략법과 입질타이밍 파악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즐거움은 월척 손맛 이상의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다. 출포리가 보트낚시의 메카로 꼽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