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지귀도

영등 귀리는
얕은 여밭에 있다

이영규 기자

▲엔에스 프로스탭으로 활동 중인 원성조(서귀포 원프로피싱 대표) 씨가 물돌이 무렵 올린 벵에돔을 보여주고 있다. 취재일은 활성도가 너무 낮아 채비를 최대한 예민하게 갖춰야 입질을 받을 수 있었다.

제주도 벵에돔낚시가 연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돌입했다. 특히 3월 한 달은 4~5월보다는 수온은 높지만 벵에돔 활성은 최저로 떨어져 고수들도 입질 파악에 애를 먹는다. 보통은 수온이 낮을수록 깊은 수심을 찾는 경향이 강하지만 제주도 영등 벵에돔은 오히려 얕은 여밭을 노리는 게 유리하다.

▲넓은여의 우측 콧부리에서 벵에돔을 노리는 모습. 멀리 우측에 보이는 포인트는 어렝이통으로, 취재일에는 동풍이 강하게 불어 반대편 포인트에서만 낚시가 가능했다.

▲강복진 회원이 올린 38cm급 긴꼬리벵에돔. 최근 제주도에서는 한겨울에도 굵은 긴꼬리벵에돔이 꾸준히 낚이고 있다.

이번 겨울은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불순한 날씨가 이어져 낚시인들을 울상 짓게 만들었다.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해 영등 벵에돔낚시는 말 그대로 죽을 썼다는 반응이다.
제주도 벵에돔낚시는 2월 초순까지는 그런대로 평균 조황을 보이지만 중순 이후로는 조한기에 접어든다. 수온이 15도 수준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낚시터 또한 북서풍에 의지되는 남제주권으로 한정되며 마릿수보다는 씨알 위주의 낚시가 이루어진다.
보통 영등철 바다낚시라고 하면 흔히들 ‘보온 효과가 있다는’ 깊은 수심을 떠올리지만 제주도 벵에돔낚시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얕은 여밭이 깊은 수심보다 유리한데 대표적인 낚시터가 지귀도와 형제섬이다.
지귀도의 경우(포인트마다 다르지만) 깊어야 평균 수심이 5~7m인 곳이 많고 30m 이상 원투해야 10m 가까이 나오는 곳이 더러 있을 정도다. 형제섬도 여건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여밭이 최저수온기에 유리한 것일까? 취재일에 동행한 엔에스 프로스탭이자 원프로피싱 대표인 원성조 씨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남해안의 경우 영등철 수온이 8도 내외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깊은 수심의 바닥을 노리지 않으면 벵에돔 낚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원도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제주도, 특히 남제주권은 영등철에도 15도 수온대가 유지됩니다. 그래서 늘 벵에돔이 섬 주변에 붙어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수온이 약간만 높게 유지되면 벵에돔 활성이 순식간에 살아나 입질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깊은 수심보다는 햇빛 영향을 많이 받는 얕은 여밭이 유리합니다. 또한 거친 여밭은 자연스레 벵에돔의 은신처가 되기 때문이죠.”

▲취재일 넓은여에서 낚은 벵에돔과 원성조 씨가 사용한 낚싯대. 알바트로스 VIP PRO는 엔에스에서 출시 예정인 고성능 릴찌낚싯대로 앞서 출시한 알바트로스 VIP보다 상위 기종이다.

▲채비를 점검 중인 원성조 씨. 토너먼트는 물론 실전낚시도 출중한 실력을 보유한 테크니션이다.

▲낚시문화연구회 강병철 회원이 벵에돔을 걸어 파이팅을 벌이고 있다.

▲원줄에 손가락을 댄 채 미세한 입질을 감지 중인 모습.

▲취재일에 사용한 쯔리겐사의 아시아LC 구멍찌. 원성조 씨가 애용하는 벵에돔찌로 시인성과 감도가 매우 우수하다.

쓰리제로로 얕은 여밭을 노린다?
취재일 오전 11시경 서귀포시 동흥동에 있는 원프로피싱을 출발할 때부터 원성조 씨는 물돌이 시간을 최고의 입질 타이밍으로 예상했다. 우리가 지귀도로 들어간 시간은 정오 무렵. 오후 3시가 간조이므로 오후 2시~4시 사이가 조류 흐름이 가장 약할 시간인데 이때를 최고의 ‘물참’으로 본 것이다. 수온이 낮고 대상어의 활성이 약할 때는 급조류보다 완조류 상황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취재일에 우리가 올라간 포인트는 지귀도 남서쪽 있는 일명 넓은여(넙데기). 본섬에서 40m 정도 떨어져 있고 곳곳에 수중여가 박혀있는 말 그대로 여밭 포인트였다. 넓은여는 이날 불고 있는 남동풍을 등지기 때문에 그나마 편한 낚시가 가능했다.
넓은여에 내리니 원성조 씨와 함께 낚시문화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강병철씨와 강복진 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오전 8시에 포인트로 들어온 두 사람은 25~30cm급 벵에돔을 3마리 낚아놓고 있었다. 오전 썰물 내내 센 너울과 강풍에 고전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갯바위에서 만난 강병철 씨가 갯바위에서 즉석 벵에돔 회를 만들어준 덕분에 모처럼 맛난 회김밥으로 점심식사를 즐긴 후 본격적으로 오후 낚시에 돌입했다.
간조는 오후 3시였지만 이곳은 들물이 늦게 받치는 곳이라 오후 4시까지도 썰물 방향으로 조류가 흘렀다. 결국 조류가 잠방잠방해지는 시각이 오후 4~6시로 줄어 물참을 2시간밖에 볼 수 없었다.
원성조 씨는 끝썰물 때는 제로알파 부력 찌로 근거리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자 초들물부터는 35m 이상 원투해 먼 거리를 공략했다. 그러자 채비가 떨어지기 무섭게 손바닥만큼 큰 자리돔이 연타로 크릴을 물고 나왔다. 자리돔이 상층에 떠있다는 증거였다.
이에 같은 제로알파찌를 쓰던 나는 바늘 위에 G5 봉돌 하나를 물려 미끼를 빨리, 깊이 내렸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복어가 연타로 물고 나왔다. 이 모습을 본 원성조 씨가 서둘러 채비를 다시 묶었다. 그가 새로 세팅한 찌는 쓰리제로(000)였다.
‘이 수심에서 쓰리제로는 너무 빨리 가라앉지 않을까?’ 했는데 내 우려는 기우였다. 원성조 씨는 이 채비로만 연속 5마리의 벵에돔을 낚아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후에 낚은 총 10마리의 벵에돔 중 5할 이상을 원성조 씨가 뽑아낼 정도로 쓰리제로의 위력은 대단했다.
촬영 때는 바빠서 몰랐는데 나중에 낚시점으로 철수한 뒤에 ‘쓰리제로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원성조 씨는 “상층에는 자리돔, 하층에는 복어가 버글거려 중층을 노렸습니다. 쓰리제로로 약간 빠르게 중층까지 가라앉힌 후 뒷줄을 팽팽히 잡아 가라앉는 속도를 늦춘 것이죠. 예상대로 6미터 정도 가라앉았을 때 초릿대를 가져가더군요”라며 입질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귀도 최고의 여치기 명당인 홍합여에 오른 낚시인들.

▲원성조 씨가 방금 올린 벵에돔을 갈무리하고 있다. 취재일 가장 많은 마릿수 조과를 기록했다.

올해는 낮낚시 4짜 찬스 실종
취재일 마릿수는 25~35cm 긴꼬리벵에돔 10마리 정도가 전부였지만 이날 두 자리 이상 벵에돔을 낚은 팀은 우리가 유일할 정도로 당일 조과는 극도로 부진했다.
씨알도 씨알이지만 영등철 지귀도는 아침과 해창(해 질 무렵)보다는 낮에 40cm 전후급들을 노리는 곳인데 이번 영등철에는 그런 특징이 사라졌다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 이번 겨울의 예측 불가능한 날씨 외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성조 씨는 “대체로 제주도 벵에돔낚시는 3월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데 올해는 일기불순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낚시가 더 힘든 상황입니다. 사실 수온은 4월과 5월이 더 낮지만 그때는 고사리장마가 찾아오기 때문에 반짝 호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고사리장마 피크에 기대를 걸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 영등철 제주 벵에돔낚시는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고 감각 있는 낚시를 구사해야 되는 상황입니다”라고 말했다.
문의 서귀포 원프로피싱 010-3698-4118

▲강병철 회원이 원거리를 공략해 올린 벵에돔을 보여주고 있다.

▲원성조 씨가 낚시 초반에 사용한 알바트로스 VIP 1.5호 목줄.

▲서귀포시 동흥동에 문을 연 원프로피싱.

▲즉석 벵에돔회와 함께 즐긴 김밥.

▲원프로피싱 매장. 최신 찌낚시용품을 구비하고 있다.

입질 타이밍? 찬스? 물때?
‘물참’으로 통일해 부릅시다
낚시를 하다보면 조류가 낚시에 알맞게 느려지거나 빨라질 때, 뒤죽박죽이던 조류가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뻗어나기기 시작할 때, 평소와 달리 흐르던 조류가 제 방향으로 설 때 등등 ‘이제 막 입질이 들어올 것 같은 상황’을 잘 표현한 용어의 부재를 느끼게 된다. 입질 타이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영어까지 포함돼 좀 그렇다. 물때라고 말하기엔 너무 포괄적이라 명확하지 못하다. 찬스, 기회 등도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표현들이다. 그래서 낚시춘추에서는 앞으로 ‘물참’을 입질 타이밍을 대신하는 용어로 표기하기로 했다. 조류(물)가 좋아져(참) 금방이라도 고기가 물 것 같은 상황을 순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앞으로는 “지금부터 한 시간 뒤에 조류가 적당히 느려지는데 그때가 고기가 잘 무는 ‘물참’이야”라고 표현한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Tackle Information>

원성조 씨 벵에돔낚시 장비와 채비
릴대
엔에스 알바트로스 VIP PRO 1-530. 올해 5월 출시를 목표로 테스트 중인 엔에스의 플래그십 릴찌낚싯대. 초리의 유연성이 좋아 약은 입질 파악에 유리했고 쫀쫀한 느낌의 복원력 강한 허리는 30cm 중반대 벵에돔 정도는 손쉽게 부상시킬 수 있었다.
원줄
도레이 슈퍼스트롱 프리미엄 토너먼트 1.5호. 서스펜딩 타입이며 1.5호지만 2호 강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줄
엔에스 알바트로스 VIP 1.2호. 낚시 초반에는 1.5호를 썼으나 벵에돔 활성이 극도로 낮아졌다는 판단에 후반에 1.2호로 교체했다.
바늘
벵에돔바늘 3호와 4호. 역시 초반에는 4호를 썼으나 초릿대를 살짝 당기다 놓는 입질이 연속으로 이어져 한 호수 더 낮춰 후반에는 3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