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특집1
낚시춘추 50년을 돌아본다  

낚시춘추와 나
낚시는 기대와 믿음,
그 창간 정신을 좇아서
김국률 예조원 대표·전 낚시춘추 전무이사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오래 된 낚시춘추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이 말이 거듭거듭 떠오른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 낚시 100년사(가칭)’ 정리를 갈무리하는 중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지금의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시대상과 낚시 변천사를 정리해 우리 낚시계가 함께 공유해 보자는 취지다. 미답의 낚시터를 탐사하듯 수많은 자료를 뒤지고 파헤쳐 왔다. 이리저리 허탕만 치다가 대물에 버금할 만한 자료를 건질 때도 있어 포기하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이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낚시 100년사’ 연구와 정리-. 함부로 엄두 못 낼 이 일을 끝내 저지르게 된 것은 내 서가에 꽂힌 600여 권의 낚시春秋 때문이다. 낚시春秋에 게재된 기록만 잘 정리해도 최소한 우리나라 낚시 50년 세월을 반추할 수 있고, 내용에 따라선 그 이상의 세월도 소환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거듭 읽고 생각하고 간추려 정리해 온 책 분량은 무려 593권(1971년 3월 창간호부터 2020년 12월호까지) 157,900쪽 분량(권당 평균 300쪽 계산)! 이 가운데 5분의 3 분량에 해당하는 지난 잡지를 만드는 데 직·간접 역할을 했던 당사자로서, 오늘에 이르러 다시 살펴보는 낚시春秋는 현직 당시의 보람과 긍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뿐만 아니다. 보다 좋은 낚시春秋를 만들기 위해 그 시절 취재 과정에서 수집했던 이전의 기록물들도 하나같이 애잔하고 소중하다. 단편적이나마 우리나라 낚시 역사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고, 신화처럼 잠든 이야기들을 소환해 낼 수 있는 이 단편적 기록물들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낚시 종합지인 낚시春秋 탄생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낚시春秋 이전의 낚시春秋와 각종 회보들이 디딤돌 
1971년 3월 1일 낚시춘추가 창간되기 이전에도 낚시춘추가 있었고, 붕어낚시에 관한 한 이보다 훨씬 이전의 기록물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낚시문화는 생각보다 일찍 생성되어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 1일 ‘서울낚시회’란 이름의 우리나라 최초의 낚시회가 조직된 바 있다. 이 서울낚시회 2대 회장인 조암(釣岩) 김성국(金成國) 씨가 1958년 6월 20일 <낚시입문>(형설문화사 발행, 4·6판 186면, 값 600환)이라는 붕어낚시 전문 서적을 펴냈고, 비슷한 시기에 <초심자 필람 붕어낚시>라는 비매품 도서도 선을 보였다. 이듬해 1959년 10월 21일엔 전국낚시연합회(1957년 4월 발족) 이재학 회장(전 국회부의장)이 <釣友(조우)>라는 잡지 형식의 회보(會報)를 발행하기까지 했다.
최초의 낚시춘추 등장은 1963년 4월 20일. 해방 이듬해에 조직되어 당시까지 다방면의 국내 낚시 행사를 주도하던 ‘서울낚시회’ 6대 회장 최신해 박사(청량리뇌병원장)가 펴낸 자신들의 회보 이름이 ‘낚시春秋’였다. 발행인은 문희봉(명동 문예서림 대표), 총무 직함의 편집 실무자는 당대의 부부 낚시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홍순길(洪淳吉) 씨. 4·6배판 12면의 비매품으로 발행된 이 ‘낚시春秋’는 1964년 5월 1일까지 제5집을 펴낸 것으로 나타나는데, 도합 48면에 달하는 이 ‘낚시春秋’의 기록 면면들은 실로 귀중하고도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다. 국산 글라스로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만큼 당시 유행하던 한작(韓作)·주작(朱作) 꽂기식 대나무 낚싯대 이야기와 당시의 출조지 및 교통수단 등등, 그야말로 옛적 낚시 풍물이 신화처럼 담겨 있다.
서울낚시회보 ‘낚시春秋’로부터 시작된 60년대의 회보 발행 경쟁은 일요낚시회보(회장 윤광수, 발행인 김시철) → 용산낚시회(회장 박종하)의 <魚友> → 고려대학교 교직원 낚시회의 <고대조도회보> 등등으로 이어졌고, 이 같은 분위기에 1970년 들어 드디어 낚시 월간지가 선을 보인다. 최초의 사례는 <낚시와 양어>.

1970년 5월 25일 6월호로 창간된 이 잡지는 다음 호(7, 8월 합병호)로 그만 수명을 다하고 마는데, 이름 그대로 낚시와 양식업 분야를 반반씩 다룬, 그야말로 성격이 어정쩡한 잡지였다. 뒤늦게 잘못 짚었다 생각했던지 이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맡았던 홍순일(洪淳一) 씨가 낚시잡지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자 하고 찾았던 인물이 당시 평화낚시회 회장을 지내던 신영보(申永保) 선생이었다.
젊은 기자 홍순일 씨의 ‘제대로 된 낚시잡지 창간’ 취지에 호응한 신영보 선생이 내심 작정하고 찾아 나선 주인공이 다름 아닌 당시 한양낚시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한형주 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였고, 신영보 선생은 이전 한 박사와 함께 한양낚시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71년 초, 두 사람의 제의를 받은 한 박사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오래도록 망설이진 않았다고 한다. 춘삼월 시조회를 앞둔 설레는 마음으로 이내 창간 작업에 돌입, 1971년 3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낚시 전문 종합 월간지 ‘낚시春秋’를 탄생시켰다.

▲ 낚시춘추와 낚시춘추 창간 이전의 회보들. 위로부터 서울낚시회 회보 ‘낚시春秋’, 국내 최초의 낚시종합월간지 ‘낚시春秋’,  전국낚시연합회의 회보 ‘釣友’.

▲ 필자 자택 서재의 책장. 1971년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600여 권의 낚시춘추가 꽂혀 있다.

▲ 81년 가거도 2구 산탁개 밑에서 타작한 감성돔을 들고 있는 필자. 20시간이 걸려 목포로 돌아왔던 고생길이 더해져 필자에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취재로 남아 있다.

낚시춘추 창간에 의기투합한 다재다능한 필진들
열악한 환경이었던 만큼 역할과 보람은 컸다. 1인당 국민총생산 289달러 시대. 전국의 낚시인구 줄잡아 30만~50만 명으로 추산하던 그 시절, 서울의 출조 낚시점은 80~90여 곳으로, 당일 출조비는 1천500원 이내. 1965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국산 글라스로드 가격은 71년 당시 4천500원(3칸대 기준)이었고, 3천부를 발행한 낚시춘추 창간호 가격은 200원. 그렇지만 시장은 개척하고 확장하기 나름-.

대부분 11월이면 납회를 하고 이듬해 3월 시조회를 기약하던 그 무렵, 낚시춘추 창간 작업에 호응이라도 하듯 낭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경기도 고양수로에서 얼음을 깨고 월척을 낚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형주 박사는 2월 14일 일요일 이른 아침, 지인들과 승용차 두 대로 현장을 찾아 나섰다. 대장간에서 대충 날조한 끌을 두들겨 ‘얼음 구멍치기’(당시의 용어)를 한 한 박사 일행의 붕어 조과는 그야말로 상상초월! 6~7치 씨알의 중치급 붕어를 의사 김재주(金在柱) 박사가 45수, 원로 낚시인 박병원(朴炳騵) 선생이 34수, 그리고 한형주 박사가 32수!
신바람 난 한 박사는 이 사실을 편집부 직원들께 긴급 타전했고, 이로써 낚시춘추 창간호 164p에는 ‘긴급 특보 - 한겨울에 자짜리가 웬 말?’이라는 제하의 얼음낚시 기사가 폭죽처럼 최초 보도되었다. 결국 ‘우리나라 붕어 얼음낚시의 역사는 곧 낚시춘추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의 우리나라 얼음낚시는 주로 잉어를 대상으로 한 ‘챌낚’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빙어낚시의 역사도 그러하고, 하나하나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대상어 추가와 함께 각종 낚시장르의 다양화 또한 낚시춘추로부터 확산, 발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간 초기의 이 같은 업적은 전문 필진들의 헌신적 참여가 원동력이었다. 훗날 ‘낚시는 8순에도 오르가슴을 하는 행위’라고 고백한 창간 발행인 한형주 박사부터가 한평생 낚시를 즐기며 우리 낚시계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구현한 분이었다.
낚시 출판물 제작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춘 다방면 인사들의 참여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편집인으로 참여한 박종하(용산낚시회 회장) 선생은 한때 ‘지리부도’ 교과서를 만들던 지도 제작 전문가로서, 춘추에 소개하는 낚시터 위치와 포인트를 안내하는 초석을 제공하였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신영보 선생은 그야말로 문무겸비한 낭만파였으며, 73년 11월 23일 출조길 교통사고로 타계한 동은(東恩) 이재학(전 국회부의장) 선생은 고문직을 맡아 춘추의 대내외적 지원군 역할을 아끼지 않았다.
곧이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김경언(만화가·한양낚시회 부회장), 노익배(사진작가), 백만기(의사), 서기원(작가·언론인), 신일철(고려대학교 교수), 양흥모(중앙일보 논설위원·청량낚시회장), 이덕희(제성치과 원장·명동낚시회장), 임창수(문화방송 영화부장), 전학도(삼양식품 상무이사), 추연근(화가·부산일보 서울지사장) 등등도 다른 분야의 잡지처럼 이름만 걸어두지 않고 각자의 전문 지식을 십시일반 나누었다. 정녕 기라성 같은 필진들이었다. 돈과 명예를 좇는 다른 직업군과는 달리, 낚시를 좋아하는 꾼들 특유의 동류의식과 자긍심의 발로였을까, 대가 바라지 않는 결집이 초창기 낚시춘추의 동력이었다. 물론 나는 이 분들을 모두 다 알지 못하고 직접 겪어 본 적 없는 분들도 있다.

▲ 1970년대 중반 무렵 한형주 박사가 경기도의 모 수로에서 낚은 대형 메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의사이자 낚시춘추 창간인인 한형주 박사는 훗날 한국

낚시진흥회 초대 회장을 맡는 등 낚시계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재학(왼쪽) 전 낚시춘추 고문이 제주 차귀도에서 원투낚시로 올린 혹돔을 들고. 오른쪽은 이재학 고문과 함께 출조한 예춘호 전 국

회의원이다.

▲ 70년대 중반 본지 필자로 활동하며 영동계곡 루어낚시를 전파했던 강릉의 심동섭 씨. 1877년 10월 1일 삼척 오십천에서의 산천어낚시 모습이다.

그리운 ‘서울특별저수지’와 ‘떡밥낚시의 게리쿠퍼’
헌신과 열정만으로 잡지 경영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창간 초기의 춘추는 거의 서점 판매에만 의존했을 뿐, 광고 영업과 정기구독 확장을 크게 이루지 못했다.

근본적 원인은 열악한 낚시시장 규모 탓이었겠지만 뭔가 경영상의 문제점도 내재하지 않았을까…. 연말 12월호에 이은 신년 1~2월호를 합병호로 묶어 발행하기를 거듭하던 중, 적자 경영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한형주 발행인은 77년 9월호(통권 74호)를 끝으로 새로운 주인에게 배턴을 넘겼다.
77년 10월호부터 새로이 출범한 춘추호 선장은 한형주 박사와 서울대 동문이자 대한일보 기자 출신으로 당시 장안의 지가를 높이던 <독서신문> 편집장(?) 이력의 정효섭(鄭孝燮) 사장. 낮에는 낚시광고 시장을 직접 뛰고, 해거름이면 사무실로 들어와 팔 걷어붙인 자세로 원고 정리에 박차를 가하는 분이셨다. 편집과 경영을 직접 진두지휘한 것이다.
새로운 발행인 정효섭 사장이 춘추에 새바람을 한창 불어넣고 있을 무렵, 1979년 2월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종로구 송월동 141번지 2층 건물 오른쪽 문을 노크했다. 간단한 면접이 이뤄졌고, 긴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3월이 시작되기 전에 출근을 시작한 10평 남짓 사무실의 편집장은 여성! 한형주 발행인 때부터 일해 온 여류시인 권지숙씨였고, 나머지 취재기자는 단 한 명뿐.

그런데 하늘 같이 믿었던 권 편집장이 만난 지 8개월 만에 춘추를 떠났고, 술친구 기자 한 명도 1년여 만에 훌쩍 떠나고 말았다. 그 사이 시조회 딱 한 번…. 낚시를 좀 더 배우고 취재 경험을 두루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2년도 채 못 되는 사이에 새로운 편집장만 셋이나 거쳐 갔을 뿐, 의기투합할 동료 기자는 없었다.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고, 독학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우선 지난 잡지들을 창간호부터 차례차례 펼쳐 가며 정독을 했다. 빛바랜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나도 몰래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시골 만화방에서 보고 또 보던 ‘의사 까불이’ ‘칠성이와 깨막이’를 그려낸 그 불세출의 작가, 김경언 선생이 낚시춘추 편집위원이셨다니? 한형주 박사와 북녘의 중학교 동창 관계로, 7년여 춘추 지면 곳곳에 그 어느 문학 작품 세계보다 더 훌륭한 낚시만화를 남긴 채, 1978년 미국으로 영영 떠나셨다는 그 분. 만화뿐만 아니라 춘추 지면에 연재한 꽁트 작품들 또한 하나같이 걸작이었다.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된 그의 낚시꽁트집 <지옥에 가보셨나요?>는 포복절도할 스토리에 낚시의 상상력이 얼마나 무한하고 풍부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극심한 홍수가 수년째 거듭되어 서울이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는 ‘서울특별저수지’ 꽁트 한 대목-. 여러 명당 포인트 중 하나인 독립문 옆 안산에서 신촌 방향을 노리면 이상하게 나오는 붕어마다 암컷들이고, 남산에 올라 북쪽으로 긴 대를 드리우면 새벽 5시경에 이르러 입질이 쏟아진다나? 그러나 씨알은 좋은데 하나같이 끌려나오는 붕어들이 흐물흐물 힘을 못 쓰고 입에서 구정물을 흘린다 했다. …암컷 붕어는 곧 이화여대를 떠올리게 하고, 흐물흐물 힘 못 쓰고 입으로 구정물 흘린다는 붕어는 통행금지 시절의 청진동 술집 골목을 떠올리게 하는 상상 속 무대였다.
창간호 무렵부터 ‘나는 붕어로소이다’로 시작해 ‘눈사람’ ‘업둥이’ ‘식구’ 등으로 이어진 이장규(원자력병원장) 박사의 칼럼은 어느 한 곳 가식과 과장

없는 낚시 이야기이면서도 울림이 깊어 오랜 세월 잊히질 않는다. 평생을 암 연구와 치료에 큰 공적을 남겨 한국인 최초로 ‘세계 100대 지성인’에 선정된 분인데, 낚시터에서도 틈 날 때면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살피곤 하셨다.
여러 분야의 낚시 이론이 채 정립되지 못했던 시절, 필자들 글 중에는 일본 서적 내용을 여과 없이 옮긴 듯한 사례도 많았다. 반대로 독창적이면서도 독보적이라는 느낌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픈 글도 있었다. MBC-TV 초창기 시절, 영화부장을 지낸 바 있는 임창수(林昌水) 선생의 ‘찌맞춤’ 이론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여기에 제대로 옮길 순 없지만, 간단히 말해 ‘F(부력)-W(중력)=제로(0)’에 근거한 붕어낚시 찌맞춤 이론은 지금도 불변의 원칙이라는 생각이다. 또 있다. 챔질의 타이밍이다. 어항 속의 붕어가 먹이를 흡입했다가 내뱉는 시간을 비디오 필름을 통해 확인한 결과, 눈 깜짝할 순간의 1/24초! 1초에 필름 24프레임이 흐르는데, 먹이를 들이키고 내뱉는 모습이 담긴 건 1개 프레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1/24초 타이밍을 포착해야만 정확히 ‘낚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고,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경우는 그냥 ‘잡았다’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지만 실제로 이 분의 낚시를 지켜본 나는 정녕 ‘붕어 떡밥낚시의 귀재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이 분의 낚시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을 ‘떡밥낚시의 게리쿠퍼 임창수’라 적은 바 있다.

▲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김경언 화백이 본지에 남긴 낚시만화. 만화 뿐 아니라 연재 콩트 작품들 또한 하나같이 걸작이었다.

추자 그 재방어와 ‘가거던 다시 돌아오지 말라던’ 가거도
창간 초창기의 기라성 같은 필진들에게 받은 감명과 소회를 일일이 거론할 수 없어 아쉽기 그지없다. 70년대 춘추 지면 곳곳을 수놓은 대구 노익배 선생의 사진은 당시의 인쇄 기술이 허접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을 뿐, 지금에 이르러 보면 볼수록 명화와 다름없다. 여러 분야의 사진작가는 많았어도 낚시를 그 분만큼 제대로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다. 루어낚시 분야의 박현재(서울릴낚시회) 선생을 비롯한 로트링 그림 솜씨를 겸비한 바다낚시 이일섭(대구), 계류낚시 심동섭(강릉), 은어낚시 김근희·주천환(부산), 붕어낚시 최운권·송소석(서울) 선생 등 경향각지의 필진들 또한 낚시춘추 지면을 빛낸 분들이다. 이들에 비해 위수(渭水) 김홍동 선생은 어탁을 비롯한 여러 낚시 장르에 다재다능한 솜씨를 뽐낸 분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때로는 대화를 통해, 때로는 현장 동행을 통해 많을 걸 깨닫고 배우게 된 나는 차츰 시야가 트였다. 새로운 분야와 목적지에 대한 호기심도 늘어났다. 낚시를 떠나는 꾼들의 목적은 언제나 대상어에 집중되지만 나의 취재 목적은 함께 떠나거나 현장에서 만나는 낚시꾼,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속내를 읽는 일이었다. 그래서 낚시현장 꾼들의 포인트와 나의 취재현장 포인트는 달랐고, 꾼들이 재미 본 그곳을 즐겨 찾는 데 비해 나의 취재 목적지는 늘 새로운 곳, 새로운 장르가 우선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초보 시절의 출장지 중 하나는 추자도. 1979년 8월 28일, 서울 이동직씨가 트롤링으로 올린 227cm 재방어가 계기였다. 영화 ‘노인과 바다’의 녹새치 사냥을 떠올리게 하는 본격 트롤링 장르인 데다, 국내 낚시 대상어를 통틀어 최대어 중의 최대어였기 때문에 우리 낚시계의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다이내믹한 그 현장 취재를 담당할 기자로 지목받은(?) 나는 1년 후 1980년 8월 26일 추자를 찾았고, 이동직씨를 포함한 일행 6명은 하추자 김생순 선장이 선발한 두 척의 배에 올랐다. 한 배에 3명씩. 기자가 탄 배의 일행은 이동직씨를 비롯한 이태희(롯데백화점 낚시코너 대표)·안창선(학원 강사) 씨. 여기서 처음 터득한 것이 낚시꾼은 선장을 잘 만나야 하고, 기자는 낚시꾼을 잘 만나야 한다는 너스레 법칙! 기자가 탄 배에선 이태희 씨가 낚은 50cm급 만새기 한 마리가 전부였고, 작은보름섬 서쪽에서 끌어올린 포획물은 최세민 씨의 213cm짜리 재방어였다. 경위와 어쨌건 이날의 현장 취재 기사로 추자도 재방어낚시는 80년대 중반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고, 국산 트롤링 낚싯대까지 출시되기도 했다. 엎치락덮치락 국내 재방어 최대어 기록 다툼은 결국 오부일씨의 248cm, 131kg짜리로 종지부를 찍었고, 이 기록은 또 I.G.F.A(세계낚시경기연맹) 82년도 어종별 최대어 순위에 올라 지금껏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1981년 11월 24일 서울을 출발해 11월 30일에야 무사귀환한 6박 7일간의 가거도 감성돔 취재도 잊을 수 없다. 당시만 해도 소흑산도로 불렸고, 현지민들이 일컫는 가거도는 ‘가거던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목포에서 대흑산도까지는 매일 여객선이 운행됐지만 대흑산에서 소흑산까지는 새마을호가 그냥 격일제도 아닌, 홀짝수 운항 일정이었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용케 가거도에 도착한 일행은 1구(대리)에서의 하루는 허탕을 치고, 사흘째 2구(항리) 쪽 산탁개 밑에서 첫 타작을 벌였다. 수면과의 거리가 엄청 높은 지형인 데다 죽기 살기로 버티는 감성돔들의 저항에 유주방 씨의 릴대가 있는 대로 작살이 나고 말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튿날 아침 날씨.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철수 예정이던 우리의 새마을호가 운항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홀짝 운항일에 잘못 걸리면 사흘 또는 닷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1월호 마감이 며칠 안 남았는데….
용왕님이 도왔는지 멸치젓을 가득 싣고 항리에서 목포항으로 냅다 뛰는 어선이 있었다. 일제 신노도HH 낚싯대를 엄청 자랑하던 진주 꾼들까지 합쳐 대여섯 명을 태운 젓갈배 신양호(지금도 그 이름을 잊지 못한다)는 11월 29일 오후 4시30분에 가거도를 떠나 밤새도록 파도 위를 뒹굴었다. 일행들은 저마다 어디에 처박혀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지 서로의 안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신양호 선장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고, 돛단배 시절의 가거도-목포 왕복에 얽힌 죽음의 행로는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높은 파도 속에 배가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가거도에서 목포항까지의 젓갈배 소요시간이 얼마였을까? 이튿날 30일 낮 12시30분이었으니 장장 20시간이었다. 바닷가 태생이라 뱃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걸 그때 다시 한 번 느꼈다.

▲ 1982년 1월 5일 통금해제 이후 출조 차량들과 낚시인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한남동 낚시타운 일대. 약 1년 뒤인 83년 3월 20일에 필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 1982년 10월 6일 관탈도에서 248cm 재방어를 올린 오부일 씨.

50년 기나긴 세월 품은 낚시춘추, 다음 세대로까지…
80년대 중반의 우리 낚시계는 도약기이자 전환기였다. 1982년 1월 5일 04시를 기해 야간 통행금지 해제가 이뤄져 주말이면 3한강대교를 건너는 서울 한남동 주유소 일대는 꾼들의 터미널이 되었고, 84년 11월 1일부터 담수가 시작된 충주호 붕어낚시는 곧 전국의 꾼들을 불러 모아 일약 전국구 낚시터가 되었다.
이에 앞서 1982년 3월 봄 시즌엔 국산 최초의 카본 낚싯대가 출시돼 장비의 고급화를 이뤘다. 당시 ㈜은성사가 출시한 민물 카본대는 수향(水鄕) 2.5칸, 3칸, 3.5칸. 해동산업에서 선보인 흑기사(黑騎士) 민물 2.5칸대 가격은 5만8천원. 국내 시장은 물론 수출 규모도 날로 늘어나 1983년 11월 30일 ‘제20회 수출의날’을 맞이해 ㈜은성사가 우리 낚시업계 최초의 ‘2천만불 수출의 탑’ 및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
화제와 질타 대상도 공존하였다. ‘돈 놓고 돈 먹기’식 낚시대회 범람이었다. 1987년 5월 29일 소백산철쭉제기념 행사 일환으로 단양문화원이 주최한 충주호 시루섬 일대에서의 붕어낚시대회는 1인당 참가비가 1만2천원이었는데도 1천284명이 모여들었다. 단일 규모 낚시대회 국내 최다 참가자였다. 프라이드 승용차 상품 때문이었다. 귀가 솔깃해진 대회 꾼들. 다음 해를 기다릴 것도 없었다. 같은 해 9월 27일 이번엔 충주 쪽이었다. 한국예총 충주지부가 조정지댐에서 개최한 대회 참가비는 2만원이었고, 그 값에 맞게 1등 상품 차종은 엑셀이었다. 이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승용차 상품 대회는 매년 봄철이면 시선 따가운 꽃가루처럼 나부껴 빈축의 대상이 되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른 80년대 후반의 우리 국내 제품은 그야말로 세계화 추세였다. 그 이전 1984년 11월 30일 ‘제21회 수출의날’에는 (주)서울조구가 ‘5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같은 날 ㈜태원에서도 똑같은 '5백만불 수출의 탑'과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지금의 바낙스 전신인 반도스포츠가 1989년 2월 세계 최초 릴 생산 4천888만개를 돌파하는가 하면, 지난 83년도에 낚시업계 최초의 ‘2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바 있는 ㈜은성사는 의미심장한 뉴스를 전했다. SILSTAR 브랜드로 한창 해외시장을 개척하던 1989년 4월 무렵, ㈜은성사 현지 판매법인이 있는 미국 사우스 캘롤라이나주 콜롬비아 공항에서 5분 거리인 ‘콜롬비아시 그린트리 오피스파크’ 내 2km 구역에 ‘SILSTAR RD’란 도로명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쉽지 않을 일인데, 지금까지 그 도로명이 남아 있을지….
그 무렵 국산 낚시용품이 세계시장을 주름잡던 중요한 지표 하나가 또 있다. 1989년 5월 13일자 발행의 일본 <주간 조구신문> 지면이 자국의 수입 시장 점유율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 가운데, 일본 낚시시장 내 한국 제품 점유율이 60.7%를 차지해 ‘1위!’라는 분석 기사였다. 자축이라도 하듯 그 해 1989년 3월 17~20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국제낚시쇼(KOFISH ’89)가 서울 삼성동 소재의 한국종합전시관(KOEX) 1층에서 개최돼 우리의 자긍심을 드높였다.
이러한 추세에 낚시춘추 또한 한결 숨통이 트였어야 될 텐데, 실제는 더 힘겨운 시련을 겪게 되었다. 낚시 인구 증가와 시장 확대로 정녕 숨통이 트일 만하던 1984년 5월, 경쟁 월간지가 창간된 것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월간 낚시>라는 이름의 잡지 발행처는 조선일보사, 방우영 사장이 발행인이었다. 춘추 식구 일부도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상황. 어떻게 버텨야 할까…. 그러나 결국은 우리가 이겼고, 경쟁 관계의 소규모 출판사 잡지가 신문사 발행의 잡지를 이긴 건 낚시춘추가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지난한 20년 세월, 악착같이 보냈다. 허리를 다쳐 추자 소머리섬을 엉금엄금 기어 다니며 취재를 하던 어느 겨울날, 갑자기 머리 위로 굉음을 날리는, 그 신문사 마크가 새겨진 헬리콥터에서의 사진 촬영 광경을 확인한 나는, 설움의 눈물을 울컥 삼켰다. 그러나 낚시는 돈과 명성이 아닌, 기대와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이미 여러 원로 선배님들로부터 배우고 깨닫고 있어 크게 겁나진 않았다.
50년 기나긴 세월 꿋꿋이 자라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져야 할 낚시춘추에게 전하고픈 말 한 마디. 겹겹이 축척된 정보들 하나하나 디지털로 복원해 우리 낚시계 역사와 신화의 저장고가 되어 주시길! 낚시춘추 만세!

▲ 본지 편집위원이었던 노익배 씨가 1971년 제2회 대한민국 건축 및 사진전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 대구조우회의 시조회 날 합천 박실늪에서 촬영한 것으로 작품명은 ‘월척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