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대구 바른병원 영안실 빈소에 안치된 이일섭 선생의 영정.

바다낚시교실」의 저자
원로 낚시인 이일섭 선생 타계

서성모 편집장

대구의 원로 낚시인 이일섭(李日燮) 선생이 지난 12월 26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선생은 한국 최고의 낚시 이론가로 「바다낚시교실」, 「낚시채비전집」, 「바다낚시 100문 1000답」 등의 저서를 통해 우리나라 낚시이론 정립에 큰 족적을 남겼다. 92년 출간된 「바다낚시교실」은 절판되기 까지 1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도 최고의 바다낚시 교본으로 꼽히고 있다.        
선생의 낚시이론 저술활동은 낚시춘추 78년 1월호에 ‘바다낚시 강좌’ 연재를 시작으로 시작됐다. 13회 연재한 것을 묶어 출간한 책이 「바다낚시특강」으로 이를 12년간 보완해 출간한 책이 「바다낚시 교실」이다. 「바다낚시교실(上)-기초편」에서 우리바다의 물때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선생은 낚시춘추 기고를 통해 어촌에서 사용해온 우리 고유의 물때에 천문학의 조석(潮汐)원리를 결부시켜 ‘과학적 물때 이론’을 탄생시켰다. 바닷물의 점성으로 인해 사리보다 이틀 후에 가장 센 조류가 흐르는 원리를 흥미롭게 풀어낸 ‘월조간격과 실제의 사릿날’, 오전과 오후의 만조 수위가 각각 다른 일조부등(日朝不等)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 ‘여름엔 그믐 밤물이 세고 겨울엔 보름 낮물이 세다’는 기사들은 오늘날까지도 바다낚시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선생의 저서는 글 외에도 사실적인 낚시그림이 독자의 이해를 더 높이는 역할을 했다. 인쇄소에 화공으로 재직할 정도로 그림 솜씨가 출중했던 선생은 자신이 쓴 모든 책의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다.  

한국 낚시이론 정립, 영남지역의 낚시단체 조직화, 낚시문화 발전에 앞장서
선생은 1927년 함경북도 회령(會寧)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조부는 만주 길림성 용정에서 한의사로 꽤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선생의 부친이 거듭된 사업 실패로 그 재산을 거의 소진했다. 그래도 선생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3남1녀의 맏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두뇌가 명석하여 직업을 자주 바꾼 부친을 따라 회령, 주을, 명천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늘 전교에서 1~2등을 다투었고, 스무 살 되던 해에 흥남공업대학교에 입학했다.
흥남공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초기 3개월은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으나 유엔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낙동강에서 전선이 고착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단숨에 역전되어 10월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그러자 명천군청의 공산당원들은 국군을 피해 도주하였고 행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청에 나와 있던 몇몇 학생들이 북진해온 국군을 돕게 되었는데 그중에 이일섭 선생도 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뒤집어졌고, 국군은 후퇴하게 되고 공산당원의 보복을 우려한 선생도 함께 남하하게 된다. 곧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난 피난길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될 줄은 몰랐다.  
혈혈단신 전쟁고아 신세가 된 선생은 대구의 한 인쇄소에 삽화 등을 그리는 ‘화공’이 되었다. 그러나 이북 출신으로 남한 땅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살려면 군인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끝에 군대에 들어갈 길을 모색한다.
군인은 이일섭 선생의 적성에 맞았다. 꼼꼼하고 정확한 일처리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스물아홉 되던 해에 부인 한옥기(韓玉基)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이북 출신이라는 딱지는 그에게서 승진의 기회를 번번이 앗아갔다. 결국 1959년 3년간 복무한 군대를 나왔다.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던 선생에겐 갖가지 권유와 제안이 따랐다. 대구 국일제과공업사의 최봉서 사장을 만나 군납 입찰 전담 상무도 했고, 그러다가 서일식품공업사라는 엿공장을 만들었다가 ‘노새집의 사탕’이란 제과업체를 인수하여 직접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60년대 이후 해태제과, 오리온제과 등 초대형 제과업체가 등장하면서 지방의 중소 제과업체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때부터 일보다는 낚시를 더 자주하게 되었다.
무명이던 시절, 낚시춘추에 영덕 백사장 원투낚시 조행기가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필자로서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옮기게 된다. 매사 꼼꼼하고 정확했던 선생은 필요한 자료를 찾아 나서고 알고 싶은 내용은 물어서 글을 완성해나갔다. 한국낚시이론의 태동기인 80년대, 선생은 낚시 자유기고가로서 낚시춘추를 비롯해 대구매일신문, 월간낚시에 기고를 이어나갔다.   
이일섭 선생은 86년 대구경북낚시연합회 발족을 이끌며 대구경북지역의 낚시문화 발전에 헌신했다. 또 대구루어낚시클럽을 창단해 루어낚시 불모지였던 영남에 루어낚시 기법과 문화를 보급했다. 유족으로 부인 한옥기 여사와 장남 이상호, 며느리 우장희, 손자 이성민, 이성훈 씨를 두었다.

▲우리나라 낚시이론 정립에 큰 족적을 남긴 이일섭 선생. 2011년 낚시춘추 창간 4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중 촬영한 사진이다.

▲83년 5월 대청호 루어낚시 사진. 왼쪽부터 노익배(대구조우회 회장, 사진작가), 박현재(서울릴낚시 대표), 김홍동 선생.

▲이일섭 선생의 유골이 안치된 경북 성주의 삼광사 납골당. 애주가인 고인이 즐겼던 술과 함께 고인이 낚은 31.5cm 꺽지 국내 최대어(81년 9월 16일/경남 거창 황강) 어탁 등이 함께 놓여 있다.

▲이일섭 선생의 저서. 10만부 이상 팔린 바다낚시교본은 최고의 바다낚시교본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