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농어를 만나기 위한 조건4

바람·수위·피딩·포말

전희태 블랙핀 스튜디오 스탭·다미끼 필드스탭

포말이 이는 갯바위에서 넙치농어를 노리는 필자.

지난 10월 17일 남원 일대의 갯바위에서 넙치농어를 낚은 필자.

요즘 퇴근 시각이 새벽이어서 일이 끝날 무렵에 출조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10월 17일, 남동풍 계열의 바람은 4~5m/s, 파도 높이가 1.5~2m로 농어낚시 출조를 하기에 적당했다. 일반적인 낚시라면 높은 파도에 해당하지만 농어를 노린다면 이 정도 높이의 파도가 있어야 포인트마다 포말을 만들어 준다. 물때는 7물 사리에 오전이 간조, 수위가 20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었다.
바람, 파고, 수위 이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해 포말이 있을 법한 서귀포 남원의 포인트로 차를 몰았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렸다. ‘첫 포인트로 저수위 남동풍에 유리한 곳을 들렀다가 들물이 진행되고 수위가 차면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고…’

예상이 딱 맞아 떨어진 조행
현장에 도착해 보니 거의 예상한 바다풍경이 펼쳐졌고 예상했던 발판 위치에서 예상했던 10여m 떨어진 수중여 앞쪽으로 싱킹펜슬을 던졌다. 캐스팅도 정확했고 예상대로 루어가 바람을 타고 곡선을 그리며 수중여 앞 포말지대의 수면을 지나올 때 아직 완전히 해가 올라오지 않은 거무튀튀한 수면 위로 거대한 파장이 일며 시커먼 어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사정없이 풀리는 드랙. 깨나 드랙을 조여 놓았음에도 어찌나 강력하게 차고 나가던지 드랙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물임을 직감하고 위험한 수중여 쪽으로 가지 못하게 적절히 스풀을 손으로 잡아주며 안전한 구역으로 유도했다. 그곳에선 드랙을 좀 풀어주며 차근차근 힘을 뺐다.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넙치농어가 힘을 다했는지 고개만 좌우로 휙휙 털어댈 뿐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해 파도에 태워서 갯바위 위로 올렸다. 립그립을 주둥이에 거는 순간 그제야 해냈다는 안도감과 생각보다도 큰 어체에 황홀함을 감출 수 없었다.
루어를 완전히 삼켜버려서 스냅도래만 겨우 보일정도로 환상적인 바늘 걸림. 그래서 안정적으로 바늘이 버텨준 것 또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진 예상대로 흐른 특별한 날이었다. 미묘한 수위 차이에도 포인트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모든 상황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는 만족감! 이 맛에 낚시를 한다.

​넙치농어 치트키 4가지
넘치농어 낚시를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이 있다. 이것만 숙지하고 포인트를 찾아나선 다면 누구도 어렵지 않게 넙치농어를 만날 수 있다.
우선 바람이다. 기본적으로 넙치농어와 바람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갯바위 연안에서 몸을 숨기고 은신하기 위해서는 너울성 파도에 의한 포말이 필수적인데 이는 바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주도를 기준으로 넙치농어 포인트는 주로 남쪽에 있다고 가정할 때 당연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바람이 맞바람이 되어 너울성 파도를 동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남쪽에 위치한 포인트라 하더라도 막상 직접 포인트에 도착해보면 단순히 남쪽을 바라보는 포인트도 있겠지만 동쪽 서쪽을 바라보고 낚시해야 하는 포인트도 상당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는 바람, 둘째는 장애물(수중여)이 필요한데 일반적인 지형이라면 바람이 불어도 장애물이 없어서 너울파도가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남쪽에 있는 포인트라고는 하지만 동서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남풍이 맞바람이 아닌 측풍이 되어 여건이 형성되지 않는다.
요즘엔 직접 포인트를 가보지 않아도 위성지도나 로드뷰 같은 기능들이 웹상에 많기 때문에 낚시를 가지 않는 날엔 지도를 보면서 포인트마다 어떤 바람에 포말이 생기는지 예상해 보는 것이 좋다.
둘째는 수위다. 아무리 유명한 포인트라 하더라도 각각의 포인트엔 넙치농어가 들어오기 좋은 적정 수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적정 수위란 너울이 치더라도 포말을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데 포인트 주변에 아무리 수중여가 많더라도 수위가 너무 높아지면 수중여 위를 너울이 지나가는 형태가 된다. 따라서 수중여의 높이와 수위가 적절하게 맞아서 포말을 만드는 곳이 좋다.

기승전결의 끝은 포말지대
​셋째는 피딩 타임. 말 그대로 넙치농어가 밥 먹는 시간이다. 보통 일출, 일몰 전후 일정한 짧은 시간대를 피딩 타임이라 부르는데 경험상 일몰보단 일출 전후에 넙치농어를 만나기 수월하다. 아침 피딩 타임이 중요한 이유는 물고기의 밥 먹는 시간이라는 점 외에도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어떤 낚시인도 다녀가지 않은 깨끗한 상태라는 것이다.
‘유명 포인트일수록 넙치농어의 반응이 약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후와 밤에는 예민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많은 낚시인이 다녀갔다는 증거다. 생자리를 찾아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포말이다. 유명한 포인트라 하더라도 넙치농어는 그곳에 사는 물고기가 아니라 최적의 사냥을 위한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위, 수중지형을 알지도 못하겠고 바람이 주는 영향 따위 계산도 못하겠다는 ‘낚린이’들은 주목하자. 앞서 말한 모든 조건을 따지는 이유의 마지막엔 늘 포말이 존재한다. 포말이라는 하얀 거품은 작은 물고기들에겐 풍부한 산소를 제공하고 커다란 물고기들에겐 몸을 숨기며 사냥하기 좋은 포지션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갯바위 루어낚시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것저것 모르겠으면 일단 포말을 찾는 것에만 집중해도 넙치농어를 만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넙치농어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면 왜 만날 수 있었는가, 어떤 바람이었나, 수위는 어느 정도였나를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비슷한 상황에 다시 또 한 번 넙치농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넙치농어는 90cm가 넘었다.

낚은 넙치농어를 방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