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원로 낚시인 주천환 선생 타계
서성모 편집장
원로 낚시인 주천환(朱天煥) 선생이 지난 10월 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주 선생은 부산 낚시계에서 가장 존경 받은 원로 낚시인이었다. 50년 넘게 부산 낚시계에서 일꾼으로서 어른으로서 소임을 다한 산증인이다. 온화한 성품의 선생 곁에는 늘 사람들이 붐볐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끝까지 신의를 지켜 사람들이 따랐다. 선생은 6.25때 월남한 실향민이다. 제2의 고향인 부산을 사랑하고 아꼈다. 73년 창립해 국내 최초, 최고(最古) 전통의 낚시연합회인 부산낚시연합회(현 부산광역시낚시협회)는 선생의 낚시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1960년대 초 평화낚시회와 부산낚시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낚시계에 발을 들여놓은 선생은 부산낚시연합회의 재무, 간사장, 사무국장, 자문위원 등의 실무를 20년 넘게 맡았다.
낚시춘추와 선생과의 인연은 각별했다. 75년부터 필자로 참여한 선생은 부산·경남의 민물, 바다낚시 정보와 낚시계 소식을 꼼꼼하게 챙겨 독자에게 전했다. 낚시춘추가 기획한 행사와 사업을 누구보다 앞장서 도왔다.
부산 서호병원 영안실 빈소에 안치된 주천환 선생의 영정.
92년 낚시춘추 최대어상 심사를 마치고 단체 촬영한 심사위원들. 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명정구 한국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영국 대구낚시연합회 자연보호위원장, 손형익 경북낚시연합회 자연보호위원장, 주천환 부산낚시연합회 사무국장, 정효섭 낚시춘추 발행인, 붕어낚시교실 저자 최운권 선생, 권오상 전국낚시연합회 고문,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
▶섬진강에서 은어낚시를 하고 있는 주천환 선생(낚시춘추 1983년 3월호).
주천환 선생이 2002년에 출간한 ‘가 볼만한 바다낚시(국제신문 刊).
6.25때 월남해 부산에 정착
평화낚시회, 부산낚시회 회원으로 활동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선생은 이곳에서 함흥철도기술학교를 나왔다. 낚시를 좋아하는 부친 덕분에 어릴 적부터 물가를 자주 찾았다. 그러던 중 6.25가 터졌다. 1.4후퇴 때 월남했는데 이때 나이가 18세. 남한으로 넘어와 국군으로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 생활을 이어가 62년에 중사로 퇴역했다.
군에서는 은어낚시 교실의 저자인 원로 낚시인 김근희 선생과 만났다.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인 김근희 선생은 낚시를 좋아하는 취미도 같아 금세 가까워졌다. 김근희 선생은 군 제대 후 부산 남포동에 평화낚시를 차렸다.
1960년대는 낚시회가 하나둘 생겨나던 낚시단체시대의 태동기다. 부산은 낚시인들이 순수하게 뜻을 모아 만들어진 낚시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이 강했다. 1960년 부산낚시회가 창립됐고 뒤 이어 태공회, 중앙낚시회 등이 차례로 결성됐다. 선생은 김근희 선생이 차린 평화낚시를 중심으로 낚시를 다니던 동호인들과 함께 평화낚시회를 만들었다.
낚시어선 운영 등 군 제대 후 벌인 사업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74년엔 남포동에 있던 부산낚시점을 넘겨받아 운영하게 됐다. 이 낚시점을 중심으로 활동한 낚시회가 부산낚시회였는데 그곳에서도 총무를 겸해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낚시회의 소속감을 중요시했던 당시 부산 낚시계 분위기에서 두 개의 낚시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선생은 특유의 친화력과 배려심으로 두 낚시회 회원들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낚시점은 그리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선생은 물건을 파는 데보다는 낚시인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부산 낚시계에서 소문난 단짝으로 통하는 주식회사 만어의 안승근 회장도 이때 만났다. 당시 안승근 회장은 부산낚시점 도로 건너편에 만어낚시의 전신인 오리엔탈 부산경남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20년 넘게 부산낚시연합회 실무
낚시춘추와 국제신문에 원고 연재
선생은 천생 낚시인이었고 또 낚시를 잘 했다. 붕어낚시, 은어낚시, 감성돔낚시, 배낚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겼다. 낚시춘추와는 75년에 필자로 인연을 맺었다. 부산낚시회 부총무를 맡고 있을 때 ‘부산 단골낚시터 해금강 뒤편’이라는 원고를 기고했다. 선생의 글은 사실에 근거해 객관적이고 정확했다. 매사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인 선생은 작은 정보도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이러한 능력은 부산낚시연합회 실무를 맡으면서 더 빛을 발했다. 선생은 70년대 중반부터 재무, 간사장, 사무국장, 자문위원을 차례로 맡았다. 부산낚시연합회는 국내 최고 전통의 전국단체민물낚시대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했는데 행사의 기록 정리는 선생의 몫이었다. 연합회를 통해 들어오는 부산 낚시계 소식은 선생을 통해 낚시춘추 지면에 실렸다. 부산 지역 곳곳의 조황과 출조 낚시인의 동선, 낚시계 구석구석를 꿰차고 있는 선생보다 더 뛰어난 소식통은 없었다. 선생에게 고정지면이 주어졌고 연재를 시작한 선생은 낚시터, 낚시 기법을 비롯해 부산 지역 소식을 전했다.
선생은 낚시춘추에 연재를 시작한 뒤 한 번도 마감일을 어긴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메일을 이용하지 않고 우편으로 자필 원고를 주고받았던 시절, 성실함과 책임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낚시춘추 필자로 드러난 면면은 선생을 부산의 낚시언론인으로 부각시켰다. 89년엔 국제신문의 낚시 코너의 고정 원고를 맡게 된다. 국제신문은 부산 지역신문으로 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폐간된 국제신보가 복간한 것이다. 89년 복간 후 선보인 낚시 코너를 맡았다. 2002년엔 국제신문에 연재해 온 원고를 포함해 40년간 발로 뛰어 엄선한 50개 섬낚시터를 소개한 「가 볼만한 바다낚시(국제신보 刊)」’를 출간했다.
부산 낚시계의 산증인
“낚시춘추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습니다”
선생은 부산낚시연합회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위원장을 맡았던 2010년대 중반에도 연합회 일과 후배들을 뒤에서 챙겼다고 한다. 한국국제낚시박람회나 낚시인의 밤 등의 행사에 초청을 받으면 격의 없이 후배들과 어울렸다.
80년대 초 주천환 선생에게 연재 지면을 내주고 낚시춘추 고정필자로 등장시킨 사람은 김국률 낚시춘추 전 전무이사였다. 신뢰를 보내준 낚시춘추에 선생은 신의로 답했다. 한때 부산의 낚시춘추 정기구독과 광고영업을 직접 맡아 회사를 도왔다. 김 전무는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주천환 선생님이 계셨기에 낚시춘추가 창간 5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84년 조선일보사가 월간낚시를 창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기 쉬운 것이어서 월간낚시로 구독을 돌리는 낚시인도 생기고 지면을 그쪽으로 옮긴 필자도 있었죠. 하지만 주 선생님은 낚시춘추와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거대 언론사와의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습니다.”
84년 부인 신차봉(申次奉) 여사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선생은 88년 10년간 운영하던 부산낚시점을 접었다. 선생은 경남 양산의 가족묘에 안치된 부인 옆에 묻혔다. 유족으로 장남 상길 씨와 장녀 숙경, 차녀 숙정 씨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