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배낚시

사계 앞바다 팁런
태풍 너울 속에서도
에기를 죽- 죽-

이영규 기자

▲파랑도호가 해질녘 두 시간 동안의 짧은 취재를 마친 후 사계항으로 복귀하고 있다. 태풍 뒤끝의 강풍과 너울이 이는 상황에서도 여러 마리의 무늬오징어를 낚을 수 있었다.

이번 여름 제주도 한치낚시는 말 그대로 죽을 쒔다. 초반부터 지속된 수온 불안정이 발목을 잡은 것인데 사정은 남해안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낚시인들은 최근 몇 년 새 최악의 조황이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그러나 한치낚시가 부진을 보인 7~8월에도 제주도 무늬오징어는 꾸준한 조황을 보였다.
폭발 조과를 견인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팁런. 특히 8월 한 달 동안은 한 배당 100마리가 넘는 마릿수 조과를 기록하는 날이 많아 한치 조황과 대조를 이뤘다. 다만 한치와 무늬오징어는 맛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고급 횟감이다 보니 마릿수낚시가 가능한 한치 쪽으로 낚시인들이 몰린 탓에 무늬오징어 팁런 조황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팁런은 연안 캐스팅과 달리 배 위에서 무거운 전용 에기를 바닥까지 내려 무늬오징어를 낚는 기법이다. 연안 에깅은 낚시인의 실력에 따른 조과 차가 크고 물속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낚시가 힘들지만 팁런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쉽게 말해 갯바위낚시와 선상낚시 조과 차로 이해하면 쉬운데, 팁런은 평소 무늬오징어가 은신하는 깊은 물속을 직공하니 그만큼 입질 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마라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거친 파도를 가르며 귀항하고 있다.

▲ “초가을 씨알로는 수준급입니다” 김영문 씨가 팁런으로 올린 800g급 무늬오징어를 보여주고 있다.

▲취재일 사용한 팁런 에기. 강풍과 너울 때문에 40g짜리를 사용했다.

오후 2시간 낚시에 300~800g급 12마리 
지난 8월 28일 사계항에서 출항하는 파랑도호를 타고 올해 첫 팁런에 나섰다. 파랑도호는 3톤급 소형 선박으로 탑승 정원은 9명이다. 팁런만 한다면 6명이 타면 적당해 보였는데 평소에는 벵에돔 선상찌낚시도 병행한다고 한다.
8월 중순이면 200~400g의 일명 감자나 고구마급이 낚일 시기. 그러나 파랑도 이정복 선장은 “요즘은 500에서 800그램짜리까지 고루 섞여 낚이고 있습니다. 대체로 예년보다 굵은 씨알이 섞여 낚이는 양상이며 마릿수 조과도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라고 말했다.  
보통 팁런은 수온이 내려가 연안 조황이 떨어질 시기를 시즌으로 보기 때문에 주로 늦가을 무렵부터 즐겨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즌에 관계없이 출조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연안에서 무늬오징어 낚기가 쉽지 않은 것이 이유로 보인다.
이날은 팁런 촬영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태풍 바비가 지나간 직후이다 보니 강풍이 불고 너울도 심했다. 특히 에깅은 원줄의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입질을 파악하는 낚시라 여러모로 악재였다.
포인트는 사계항에서 10분 거리인 송악산 앞 해안. 멀리 관광객들의 둘레길을 걷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이처럼 가까운 근해에서도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점도 제주도 팁런의 매력이었다.

▲낚은 무늬오징어로 만든 먹찜과 회. 당일바리 식당에 갖다주니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장만돼 나왔다.

▲취재를 마친 후 무늬오징어 요리를 맛보며 회포를 풀었다. 왼쪽부터 당일바리 식당 김기범 대표,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 김영문 씨다.

▲야마시타의 팁런 용품. 왼쪽이 일반 에기의 머리에 씌워 사용하는 TR 싱커, 오른쪽이 팁런 에기인 에기왕 TR이다.

강풍과 너울 탓에 부진한 조황이 예상됐으나 걱정은 기우였다. 파도가 높아 40g짜리 팁런 에기를 사용해 바닥을 찍고 두 번 정도 저킹하자 대 끝을 주-욱 주-욱 당기는 입질이 들어왔다.
첫 입질은 김영문 씨가 받았다. 의외로 굵은 800g짜리였다. 이맘때 평균인 200~300g보다는 훨씬 굵었다. 김영문 씨는 “무늬오징어가 1년생이라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2년 정도 사는 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녀석이야 발육이 빠른 녀석이라고 치더라도 이맘때에 1킬로그램이 넘는 씨알도 종종 올라오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후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이 500g급을 2마리 올렸고 30분 뒤에는 나도 300~400g급을 3마리 올릴 수 있었다.
오후 6시경이 되자 너울이 더욱 거칠어져 낚시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돼 철수를 결정했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3명이 낚은 마릿수는 모두 12마리. 선장은 운전을 한다고, 나는 촬영을 한다고, 게다가 최악의 바다 조건에서 2시간 만에 거둔 조과로는 매우 양호한 결과였다.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은 “연안 에깅은 해가 갈수록 손맛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원 고갈이라기보다는 낚시인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낚시인 수 대비 어획량이 부족해진 것이죠. 반면 선상 팁런은 언제나 꾸준한 조황을 보이다보니 팁런 위주로 즐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일바리 식당 김기범 대표가 무늬오징어회를 장만하고 있다.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이 방금 올린 500g급 무늬오징어를 보여주고 있다.

▲모슬포 사계항에서 출항하는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이 무늬오징어를 끌어내고 있다.

▲9월 중순 현재 400g 이상급 무늬오징어가 많이 낚이고 있다.

▲취재팀이 낚아낸 무늬오징어들.

낚은 고기 저렴하게 요리해주는 ‘당일바리’ 식당
사계항으로 복귀한 뒤 곧바로 무늬오징어 맛을 보기로 했다. 마침 사계항의 ‘당일바리’ 식당에서 낚은 고기를 갖고 오면 저렴한 가격에 요리를 해주고 있었다. 선착장에 배를 대면 바로 앞에 보이는 식당이다. 모슬포 인근으로 출조한 육지 낚시인들이 식사도 즐기고 낚은 고기 장만을 맡기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제주도에는 이처럼 낚은 고기를 가져가면 수고비와 상차림 비용만 받고 저렴하게 요리해주는 식당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 사계항 당일바리 식당은 음식 맛은 물론 깔끔한 고기 장만 솜씨로 육지 낚시인들에게 소문난 곳이다.
무늬오징어의 경우 기본 반찬과 물회를 만들어주는 비용으로 1인당 1만원을 받는다. 무늬오징어 먹찜의 경우 양에 관계없이 한 테이블당 1만원을 받기 때문에 4인 정도가 찾기에 부담이 없다.
깔끔하게 장만된 무늬오징어 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지 달면서 쫀득한 식감이 입 안 전체로 퍼졌다. 잠시 갑오징어의 달고 구수한 맛이 떠올랐으나 확실히 갑오징어보다는 깔끔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먹찜은 냄비에 갑오징어를 넣은 뒤 소주 2병을 붓고 쪄냈다. 알콜 성분인 소주는 물보다 빨리 증발했는데 맹물을 넣고 수증기로 찔 때보다 육질이 훨씬 부드럽고 잡내가 나지 않았다. 당일바리 식당은 파랑도호 접안장과 가까우므로 출조 후 연계해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의 파랑도호 이정복 선장 010-5491-0291, 당일바리 식당 김기범 대표 010-6661-5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