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60

낚시인의 권리와 의무

낚시면허제와 자연보호운동

김범철 강원대학교 환경학부 명예교수 / ‌전 한국하천호수학회장

낚시면허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논쟁거리였다. 환경부에서는 낚시면허제를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다가 포기하고 미완성인 채로 묻혀 있다. 필자는 이제라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가지 반대 논리도 있겠지만 자연보전과 낚시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낚시면허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첫째 목적은 자연보호이다. 어류의 남획을 막고 어류군집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낚시면허를 받을 때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이 어류포획에 관한 규정집이다. 어류보호와 자연보전을 위한 노력의 의무를 강조하는 서론으로 시작하여 어류를 포획하는 방법, 도구, 체장 제한, 마릿수 제한, 보호 대상 어종 등이 상세하게 적힌 규정집을 읽어보면 어류보호를 위한 세심한 노력과 의무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규정집을 한 번 읽어 본 사람은 어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낚시규정
필자는 미국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방문연구를 하면서 수년간 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낚시면허를 구입하고 낚시를 다니며 주말을 보냈기 때문에 몇 개 주의 낚시규정집을 상세히 읽은 경험이 있다. 넓은 미국대륙은 지역마다 특색이 있기에 주별로 별도의 낚시규정을 가지고 있고 낚시면허도 주별로 구입해야 한다. 대체로 미국 북부지역에는 빙하작용으로 만들어진 자연호가 많아 청정수역이 많고 낚시규정도 더 강화되어 있다.
낚시규정 중 인상적이었던 것으로는 미네소타주의 낚싯바늘 개수 제한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대개의 주에서는 낚싯대의 개수를 한 대, 혹은 두 대 정도로 제한하는데 미네소타주에서는 낚싯바늘의 개수를 한 개만 허용하고 있다. 낚싯바늘이 한 개만 허용되니 당연히 낚싯대의 개수는 한 대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단, 루어에 사용하는 합쳐져 있는 세 바늘은 한 개로 간주하여 허용된다.
가져갈 수 있는 마릿수 제한도 흔한데 규제 대상이 되는 어류는 지역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유해외래어종인 배스는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마릿수 제한, 체장 제한의 대상어이다. 흔히 하루 3~6마리로 제한하고 있다. 마릿수 제한을 읽어보면 재미있는 규정이 있다. 포획대상이 아닌 물고기는 살림망에 넣으면 안 되고 즉시 방생하여야 하며, 포획이 허용되는 물고기일지라도 일단 한 번 살림망에 넣은 물고기는 다시 방생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마릿수 제한이 있다 보니 나중에 낚은 물고기가 더 큰 경우에 큰 것으로 바꾸어 가려는 행동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살림망에 갇혀 있던 어류는 상처를 입거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선 민물고기를 식량자원 아닌 야생동물로 취급
미국 북부와 호주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규정은 잉어를 낚을 경우 놓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잉어는 미국과 호주에서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어종이므로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위스콘신주의 멘도타호에서 보니 1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잉어들이 호수 가장자리를 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수중의 갱단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도 잉어낚시를 하지 않고 그보다 몸집이 작은 배스와 블루길 등을 대상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들어 보니 잉어를 낚으면 죽여서 근처 유해어종 수거함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의 배스 방생금지 규정과 유사한 것이다. 죽이는 방법을 물어보니 아가미를 칼로 찔러서 피를 내라고 한다. 짐승 같은 느낌이 드는 펄떡거리는 거대한 잉어를 칼로 찔러서 죽여야 한다니까 민물고기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잉어를 낚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스를 낚으면 방생하지 말라는 규정은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낚시면허제를 통하여 어획을 규제하는 이유는 민물고기의 자원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남획에 의해 쉽게 고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민물고기를 식량자원이 아니라 야생동물로 취급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호수나 하천 정도의 규모에서는 대부분 그물을 이용하는 대량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 넓은 바다에서도 어류자원의 남획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호수에서는 더욱 쉽게 자원이 궤멸할 수 있어 바다보다 더 엄격한 남획 방지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물을 이용한 상업적 어획이 허용되고 있고, 허용 개수와 규정을 위반한 그물이 많음에도 관리하는 인력이 없이 방치되어 있어 어류 감소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낚시면허제 실시한다면 그물 어획도 관리·통제해야
낚시면허제를 실시한다면 낚시와 함께 그물을 이용하는 어획도 관리하고 통제하는 계기가 되고, 상업적 어획을 중단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낚시면허제에서 얻어지는 수입이 수생태계를 관리하는 인력의 비용을 보전할 수도 있고 환경관리 인력을 배치하는 타당성도 확보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파크 레인저, 포레스트 레인저 등의 자연환경전문경찰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낚시면허제의 또 하나의 목표는 낚시인의 권리 증진이다. 유료화를 통하여 낚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당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유료낚시터에서는 반가운 손님이 되지만 무료낚시터에서는 쓰레기 투기자로 천대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료화로 얻어지는 수입을 낚시터의 방문자에 비례하여 관리비용으로 지원한다면 아마 지역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며, 낚시 편의시설, 어족자원의 관리 등에 쓰일 재원도 확보될 것이다.

낚시인은 수생태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낚시인의 의무라고 생각되는 또 하나의 활동은 자연보호운동이다. 우리나라의 환경보호운동을 보면 물고기의 보호를 위한 활동이 거의 없다. 기업의 폐수 방류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만, 민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수생태계 보호와 수중생물 보호를 위해 낚시인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낚시인이 수생태계를 가장 아끼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사실상 물가에 거의 가지도 않는다. 물을 찾더라도 경치감상에 그친다.
필자는 ‘호수의 과학’을 낚시춘추에 연재하면서 왜 그런 원고를 환경전문잡지가 아닌 낚시잡지에 게재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낚시인이 수생태계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수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답을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낚시인협회가 선거활동에 참여하여 정치인들이 수생태계의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낚시인들이 권리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정치인들이 수생태계 보호를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