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맞이 연속기획
낚시춘추와 나

낚시춘추는
잡지를 넘어선 역사

박준걸 본지 연재소설 「씁새」 필자

매월 중순쯤 지나면 우편함을 들여다본다. 그 우편함에서 비닐포장으로 감싸인 책자를 발견하는 날이면, 작은 희열이 몰려온다.
집으로 들어가 대충 씻고는 커피를 한 잔 타낸다. 그리고는 비닐포장을 벗기고 자칫 종이에 손가락이라도 베일만큼 화려하게 날이 선 잡지를 펼친다.
코끝으로 커피향이 올라오고 사락사락 깨끗한 눈을 밟는 듯한 소리를 내며 페이지가 넘어가고 한 달을 고생했을 기자들과, 운영진들이 만들어낸 앙칼진 화려함이 펼쳐진다. 그리고 커피향기만큼 진한 땀 냄새가 몰려온다.
나는 지금 활자와 사진으로 엮어진 잡지라는 이름의 종이묶음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정보와 소식이라는 의미조차 넘어서버린, 반세기의 역사를 읽고 있는 것이다.
매일 매일이 쉴 틈 없이 변하고, 숨쉬기조차 바쁘도록 발전해 나간다. 5G를 이야기하고, 휴대폰으로 실시간 정보가 공유되고, 손가락 몇 번의 클릭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휴대폰의 앱 몇 개만 깔아도 낚시정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활자로 펼쳐지는 잡지는 그저 철 지난 소소한 읽을거리로 또는 아날로그로 치부되는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 버렸다고들 한다.
‘그걸 언제 읽고 있어? 그건 지난 달의 이야기 아닌가? 통화 한 번이면 전국의 낚시터 조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
음… 그래, 그건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언가 시원하게 볼 일 보고는 뒤처리를 하지 않은 찝찝함은 또 무엇인가?
정보는 수없이 받아들이지만, 정작 그 수많은 정보들은 수집되어지고 보관되지 못한다. 어쩌면 소중하기 그지없을 추억마저도 속절없이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정신 사나운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사라진다.
그래서 이 잡지는 소중하다. 50년의 기록과 추억과 정보들이 화려한 사진들과 언제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활자로 멈추어 작은 책장에 꽂혀 있을 테니까.
낚시인들의 추억과 그 시절마다의 기록과 날 것의 정보들이 이제는 50년의 역사를 넘어 100년을 향하는 전설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예전의 잡지를 문득 꺼내어 읽으면 빛바랜 종이에서 풍겨 나오는 퀴퀴한 향기가 커피향만큼이나 우리의 추억을 되돌려 줄 수 있기를.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서 멈출 수 있는 용기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쉼표를 찍어주는 나의 소중한 아날로그, 낚시춘추.

▲씁새 1회가 실린 낚시춘추 1995년 7월호. 제목부터 상스럽다며 연재 초기 때는 항의성 편지도 많이 받았었다.

낚시춘추 50년, 씁새 25년
낚시는 그야말로 코 찔찔 흘리던 시절인 5살 때부터 배웠다. 6.25전쟁으로 실향민이신 아버님의 유일한 취미가 낚시이셨고, 가끔 투망을 들고는 천렵을 가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한 칸 대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쫓아다녔으니 나의 낚시 인생도 근 55년은 되는 듯하다. 그 당시에는 자가용이 흔치 않은 시절이어서 버스를 이용하여 낚시를 다니시곤 했는데, 코끝 쌔한 새벽에 잠에 취한 나를 깨워 함께 다니셨다.
이때 지금도 얼굴이 떠오르는 한 분이 낚시춘추의 설립자이신 한형주 박사님이다. 당시에는 낚시 인구도 적었고, 꽤 고급 취미였을 것이다. 은행원이셨던 아버님은 같은 실향민이셨던 한형주 박사님과 꽤 아는 사이셨는데, 금호동에서 버스를 타고는 한참 졸고 가다가 어느 곳에선가 버스가 정차하고 한 무리의 낚시꾼들이 타시고는 했다.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한형주 박사님이셨다.
늘 버스에 오르시면서 “어이구 꼬마 조사님 납셨네? 오늘도 붕어한테 끌려가지 않게 조심해.” 등의 농담을 던지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그때야 이분이 누군지나 알았겠는가? 그저 무슨 병원의 원장님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와 낚시춘추는 필연이었던 것일까? 지금도 한형주 박사님이 아버님께 선물해주신 「팔자섬의 메뚜기」를 꺼내 읽을 때마다 그 인자하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이리저리 이사한다고 다 없어졌지만, 낚시광이셨던 아버님께서 낚시춘추를 창간호부터 빠짐없이 사 모으셨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도 낚시춘추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한창 사춘기인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 놈들은 선데이서울에 심취했을 때 나는 낚시춘추를 보고 있었고, 애 늙은이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낚시춘추와 씁새의 만남
씁새라는 해괴한 이야기가 선을 보인 것이 1995년 7월호였으니까 이 해괴망측한 이야기도 근 25년을 써온 셈이다. 물론 그 전에도 ‘제자님 나의 제자님’, ‘조어무림’ 등의 이야기를 썼으니까 연재 기록은 28년 정도 되지만.
씁새가 나올 무렵에 독자투고란이 낚시춘추의 맨 끝머리에 있었다. 그때의 생각이 참 묘했었다. 늘 읽어 오는 독자들의 조행기인데, 영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다.
친한 친구들끼리 갔는데… 왜… 이리도 공손하고 예의 바르지? 존댓말이 오가고… 유교국가라서 그런가? 내 친구 놈들은 욕설이 난무하는데?
어째서 고기 잡는데, 3차 대전이라도 치르듯이 전투적이지? 그러고, 다들 고기를 그리 잘 잡아? 나는 꽝 치기 일쑨데?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라. 친구 놈이 어딘가 좋은 낚시터가 있고, 물 반, 고기반이라고 해서 쫓아갔는데 그야말로 찌 한 번 움직이지도 않고 날밤을 새웠다면? 욕설이 서로를 꿰뚫고, 심각하게 주먹질도 고려해 본다.
고요하고 사색적이며, 철학적인… 웃기지마라! 한 시간 정도 찌 하나 까딱 안하면 육두문자가 남발하고, 미끼 바꾸고 채비 바꾸고 난리가 난다. 그리고 갈 때마다 고기 풍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양어장에서 낚시해도 꽝은 친다!
거기에 양반스럽고, 유교적인 낚시? 뻥치지 마라! 날밤 새우고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서는 거지꼴로 돌아오는 게 낚시다. 바다낚시라면, 옷은 파도를 처 맞아서는 소금기가 허옇게 말라붙고 주꾸미나 갑오징어낚시라도 다녀오면 전위예술가가 붓으로 개난장을 벌인 모습이다.
그리고 고요한… 뭔 소리여? 어느 낚시꾼 하나 씁새만큼 사고 한 번 안 친 사람이 있겠나?
이것이 ‘씁새’가 나오게 된 내력이다. 있는 그대로, 상황 그대로, 날 것으로 횡행하는 육두문자 그대로. 가식 없이 진정한 낚시꾼의 이야기를 써보자.

▲서재에서 낚시춘추 2020년 3월호를 보여주는 필자. 올해로 25년째 씁새를 연재하고 있다.

편집장 서랍에 처박혀버린 첫 원고
첫 회는 씁새라는 제목부터 욕이었고(음… 쓰벌놈의 새끼의 준말이다.), 쫀득한 욕들이 펼쳐지자 편집장께서 많이 당황하시는 바람에 두 달 동안 지면에 올라오질 못하고 편집장님 서랍에 박혀 있었다. 결국 첫 회의 제목이 편집장님의 당황과 고뇌와 눈물이 점철되어 ‘뻰찌’라는 이름으로 올라온다.
이후 씁새라는 제목 그대로 연재되기 시작했지만, 독자들로부터 항의성 편지를 무척 많이 받았다. 대충 ‘낚시춘추라는 정중한 잡지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점잖은 잡지에 웬 사고뭉치들의 욕설이 난무 하는가? 이건 잡지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행위다’라는 항의성 글들이었다.
물론, ‘재미있다! 좀 더 쫀득스러운 욕설을 해 달라. 이번호는 욕설이 약하다!’ 등의 글들도 있었다. 아마도 낚시잡지계의 김구라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편집부의 무식스러운 뚝심으로 계속 연재되고 씁새도 나이를 먹느라 욕설이 많이 중화되었지만.
씁새를 정의한다면 낚시에 대한 카타르시스라고 생각한다. 낚시를 가지만, 해괴한 사고를 치고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고, 더구나 어떤 때는 낚싯대는 드리우지도 못하고 사고나 치고는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욕두문자는 별책부록이고.
이러한 일들이 아마도 추측컨대 낚시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꽝조사들의 심경을 위로해 주지는 않았는지… 자기합리화를 시켜본다.
“그래! 뭐 씁새라는 해괴한 놈들도 있는걸! 나는 그나마 다행이야.”
“맞아!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로군!”
씁새 25년. 많은 이야기를 해 드렸고, 독자님들의 정신적인 충격을 고려하여 못 다한 이야기도 많고, 앞으로도 쓸 이야기는 많다.
낚시춘추 50년의 절반인 25년을 씁새도 같이 했다면 좀… 주제넘은 이야기일까.

개차반낚시회. 씁새, 호이장 놈, 총무 놈, 회원 놈
씁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려오던 내 별명이다. 왜 그런지 나는 진지했건만 결론은 사고나 친 것으로 끝나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래서 씁새라는 별명이 붙었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의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진지한 일상이 꽤 큰 사고로 변질되어 버리고는 한다.
겨울에 야외 수업하다가 추위에 떠는 친구들이 불쌍해서 불을 피웠는데 남이 뼈 빠지게 산에서 해온 나뭇단에 옮겨 붙어 홀랑 태우는 바람에 물어주기도 하고, 여름에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한 녀석이 깊은 곳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내 딴에는 사람들 부른다고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건만, 남들은 친구 빠져 죽는데 좋다고 손뼉 쳤다고 두들겨 맞는 식이다.
낚시도 그렇다. 비오는 날, 친구 놈들 낚시 간 저수지를 쫓아가다가 승용차 라디오 안테나에 비닐이 걸린 것을 귀신이 쫓아온다고 공포에 질려 때려 밟다가 남의 과수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대청댐에 귀신이 산다 편), 김포수로에 낚시 갔다가 거름통에 빠져서 차 트렁크에 실려서 목욕탕으로 가던 것을 시체를 싣고 가는 것으로 오인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특공대가 출동하고(수난기 편), 낚시금지된 저수지를 가느라고 주민들에게 군에서 저수지 시찰 온 공무원으로 행세하다가 군수님으로 오인 받고(군수님, 우리 군수님 편), 소변이 마려워 싼 곳이 하필 해양경찰서 담벼락인 것(이번호 내일을 향해 쏴라 편) 등등.
씁새인 나로서는 그저 진지할 뿐이다. 귀신에 홀려서 무서웠고, 거름통에 빠져서 슬펐고, 낚시 잘되는 저수지가 가보고 싶었고, 소변이 마려웠을 뿐이다. 결단코! 씁새는 진지한 비극이지만, 독자들은 희극이다.
이야기 중 호이장 놈은 씁새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이다. 어쩌다가 네 놈이 모여 낚시를 다니다가 급조된 개차반낚시회(그냥 이름만 낚시회다)의 회장이 아닌 호이장이다. 씁새가 명예회장(?)이므로 회장이라는 칭호를 줄 수 없어서 호이장이다.
늘 운전기사 겸, 요리사 겸,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한다. 의외로 낚시는 신의 경지에 오를 만큼 잘 한다. 늘상 씁새에게 치어 살지만 심성이 습자지만큼 여리다. 서울에서 씁새와 같이 학교를 다녔고, 씁새가 대전으로 내려오자 미친놈처럼 회사 때려치우고 같이 대전으로 내려왔다. 씁새와 똑같이 고향이 충북 음성이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딸 하나 시집보내고 풀죽어 지내다가 한 여자와 썸 타는 중이다.
총무 놈은 그냥 호칭이 개차반낚시회의 총무 놈이다. 개차반낚시회가 말 뿐인지라, 회비를 걷는 일도, 모임을 주선하고 경비를 치르는 일도 없다. 그냥 너 총무라고 해라! 이래서 총무 놈이다. 대전에서 만난 오랜 친구로 심성은 지랄 맞게 까칠하다. 그래서 옳은 소리하며 씁새에게 대들다가 말빨로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깐죽이로 통한다. 낚시는 보통의 낚시꾼 정도는 한다. 전형적인 대전 토박이다.
회원 놈은 그냥 회원놈이다. 처음에는 감사라는 호칭이 주어졌다가 더 좋은 호칭을 달라고 대들다가 회원 놈으로 강등됐다. 어차피 개차반낚시회에 호칭이나 계급이 뭔 소용이겠는가….
호국의 요람 논산 출신이라고 바락거리지만, 우리에게는 부르주아 지주의 자식 놈이라고 불린다. 그냥 그렇게 불린다. 낚시는 씁새와 마찬가지로 젬병이다. 낚시는 뽀대와 패션이라고 주장한다. 가끔 신상 낚시복이나 낚싯대를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부르주아 자식이라고 욕먹는다.
이외에도 제주도로 이사를 가버린 거시기, 외국 놈 조지, 딸딸이(경운기 타는 농부 놈), 스쿠타(스쿠터 타는 놈)등등이 가끔 출몰한다. 개차반낚시회는 정식 이름도 아니고 흔한 친목모임도 아니다. 그저 죽이 그런대로 잘 맞는, 사고 잘치고, 욕지거리 깔끔하게 던질 줄 알고, 뒤끝 없는 놈들끼리 웃자고 만든 명칭이다.
‘우째 우덜은 하는 일마다 개 차 반이여?’ 이러다가 개차반낚시회가 만들어졌다. 어느 누군들 슬픔 한 조각 없겠는가. 호이장 놈은 잘 나가던 회사에서 IMF로 명퇴를 당했고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회원 놈도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하다가 IMF로 부도가 나고 전 재산 팔아서 빚 갚다가 2년여를 객지에서 막노동을 하며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 물론 아직도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 지금도 술만 마시면 그때의 부하직원들 생각에 미안해서 눈물을 흘린다(어두운 시대를 향하여 편).
총무 놈 역시도 몇 번의 창업과 실패로 회생의 절차를 밟고 있다. 몇 번을 개차반낚시회 인물들의 사진을 싣고 싶어 했지만, 극구 사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개차반낚시회로 통용되는 우리들이 사고 잘치고, 육두문자 잘 날리고 하는 모든 것이 그런 울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두운 시절을 뚫고 나올 힘조차 없었을 테니까.
씁새라는 이야기에 그렇게 세상의 슬픈 이야기가,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진다. 그리고 낚시춘추는 그 기록을 하나하나 고스란히 담아줄 것이고, 씁새에게 공감하는 모든 낚시꾼들의 이야기를 보관해 줄 것이다. 씁새는 바로 천만 낚시꾼 모두이며, 힘들고 지쳐도 다시 일어서는 당신이다. 당신이 바로 씁새다. 또한 50년 역사를 넘어서 전설을 향해 달려가는 낚시춘추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전설을 위하여! 모든 낚시꾼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