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귀도

톱클래스 대물터의
비결은 ‘여밭’

이영규 기자

제주도 겨울 벵에돔 시즌이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초반에 강세를 보였던 범섬, 섶섬 등의 조황은 한풀 꺾인 상태이며 지귀도의 선전이 돋보인다. 지귀도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큰 씨알이 낚이는 대물터로 유명하다. 1월 중순 현재 일반 벵에돔보다 긴꼬리벵에돔이 굵게 낚이고 있다.

11월 초순 무렵, 범섬에서 굵은 벵에돔이 잘 낚인다는 연락을 받고 취재 계획을 세웠으나 계속된 일기 악화로 일정을 포기했다. 결국 보름 정도 지난 12월 23일에 현장을 찾았고 취재 장소는 지귀도로 바뀌어 있었다. 21~23도 수준을 유지하던 수온이 중순 이후 20도 이하로 내려가며 ‘깊은 곳보다는 얕은 곳’의 조황이 앞서는 상황이었다. 
수온이 내려가면 보온 효과가 좋은 깊은 곳이 유리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왜 깊은 범섬은 부진하고 얕은 여밭인 지귀도는 조황이 살아난 것일까? 이유는 수온 변화에 따른 두 고기, 즉 벵에돔과 자리돔의 활성 변화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수온이 내려가면 벵에돔 활성은 둔해지지만 묘하게도 낚시를 방해하는 자리돔 활성은 좋아지는 것이다.
보통은 벵에돔 활성 수온을 18도 내외라고 규정하지만 20~23도도 크게 나쁜 조건은 아니다. 다만 이때는 작은 벵에돔과 큰 벵에돔 모두 활성이 뛰어나서 씨알 선별에 어려움을 겪을 뿐 낚시만 잘하면 좋은 조황을 거둘 확률이 높다(벵에돔낚시에서 18도 전후가 좋다는 얘기도 사실은 ‘20도 이상일 때보다 잔챙이가 덜 덤벼 좋다’는 얘기일 뿐 큰 벵에돔의 활성이 이전보다 좋아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따라서 수온이 내려가면 벵에돔은 잔챙이와 대물 모두 활성이 낮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에 반해 자리돔은 반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 고수온 상태에서는 다양한 잡어가 성화를 부리지만 유독 자리돔은 17~18도 전후로 수온이 내려가야 활성이 살아난다(자리돔은 제주권 수온이 15도 가까이 떨어지는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수온이 낮은 영등철에 밑밥을 줬더니 자리돔이 피어오른다고 해서 수온이 올랐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마노 필드스탭 김광우 씨가 어랭통 왼쪽 홈통에서 벵에돔과 파이팅을 벌이고 있다.

▲30cm급 벵에돔을 올린 김광우 씨.

잡어 설칠 때는 깊은 곳보다 얕은 여밭이 유리   
수온이 내려가면 벵에돔과 자리돔의 물속 포지션도 달라진다. 활성 좋아진 자리돔은 중상층에서 놀고, 벵에돔은 중하층에 배치되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 따라서 밑밥을 뿌리고 채비를 던지면 벵에돔보다 자리돔이 먼저 덤비기 때문에 이전보다 벵에돔 낚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벵에돔이 솟구치는 높이도 고수온 때보다는 낮아진다).
벵에돔낚시의 교과서적 이론에 따르면, 잡어가 많아도 벵에돔의 덩치가 더 크고 빠르기 때문에 벵에돔이 먼저 미끼를 덮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이론은 ‘잡어와 벵에돔이 함께 노는 상황’을 기준한 것이므로 그 외의 상황에서는 들어맞지 않는다. 이 이론이 늘 통용된다면 벵에돔 낚기가 이렇게 어려워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왜 지귀도는 수온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조황이 살아나는 것일까? 지귀도 낚시에 능통한 제주 낚시인 이승배 씨는 얕은 수심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승배 씨의 말이다.
“12월 초까지 호황을 보였던 범섬 남쪽 포인트의 경우 수심이 20미터에 달할 정도로 깊습니다. 이런 곳은 수온이 내려가 자리돔이 중상층에서 활성화하면 벵에돔 낚기가 힘들어집니다. 반면 지귀도는 얕기 때문에 자리돔과 벵에돔이 거의 같은 층에서 논다고 보면 됩니다. 자리돔에게 미끼를 뜯길 위험도 높지만 벵에돔이 먼저 미끼를 덮칠 확률도 함께 높은 거죠. 여기에 밑밥을 이용한 기술적인 잡어 분리, 빵가루 밑밥과 미끼를 이용한 변칙 공략까지 더해진다면 오히려 낚시가 수월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정태공TV로 유명한 정동근 씨도 큰 손맛을 봤다.

▲어랭이통에서 걸어갈 수 있는 덤장 포인트. 늘 10명 가까운 낚시인이 늘어서는 명포인트이다.

▲벵에돔낚시인들이 자주 찾는 광명낚시. 밑밥은 물론 최신 낚시용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취재일 남쪽 끝여에서 대박 조과를 거둔 현장환(왼쪽) 씨와 김영도 씨.

어랭이통의 분전
내가 지귀도를 찾았던 12월 23일은 지귀도 벵에돔 조황이 한창 살아날 시기였다. 최근까지도 조황이 좋았는지 평일 점심 때 출조했음에도 거의 모든 포인트에 낚시인이 올라가 있었다.
제주에 사는 시마노 필드스탭 김광우 씨와 함께 내린 곳은 서쪽의 일명 어랭이통 포인트. 바다를 봤을 때 맨 우측 콧부리를 제외하곤 깊숙한 홈통을 이루고 있어 조류 흐름이 약한 포인트다. 그러다보니 조류가 약한 날은 어랭이(용치놀래기)가 쉴 새 없이 달려든다. 그래서 어랭이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게다가 전방 30m 지점부터는 얕은 여밭이라 썰물 때는 수중여 머리가 드러날 정도다. 그래서 가급적 가까운 거리를 노려야 되므로 잡어 분리에 능통하지 않으면 벵에돔 낚기가 쉽지 않다.  
예상대로 낮에는 어랭이가 설치는 바람에 낚시가 쉽지 않았고 벵에돔 입질까지 저조했다. 김광우 씨가 두 번 정도 목줄을 터트리는 큰 입질을 받았지만 끌어내지 못했으니 무조건 벵에돔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 해질 무렵 김광우 씨가 30cm급 2마리를 연타로 끌어낸 것이 어랭이통에서는 가장 좋은(?) 조황이었다.
철수 때 보니 이날은 지귀도 전체가 불황이었다. 다만 유독 한 곳에서만 대박을 쳤는데 남쪽 동모 옆에 있는 끝여 포인트였다. 이날 끝여에 내린 김영도 씨는 50cm급 벵에돔 포함 30~40cm을 혼자 10마리 이상 낚아 부러움을 샀다.

▲여치기 포인트로 유명한 넓은여에 상륙 중인 낚시인들.

▲남원에서 온 김정호 씨가 덤장 포인트에서 낚은 벵에돔을 자랑하고 있다.

▲어랭이통에서 낚시한 남원 오익홍 씨가 해질 무렵 올린 벵에돔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1월 들어 긴꼬리벵에돔 씨알 돋보여  
1월 10일 현재 지귀도는 마릿수보다는 씨알 위주로 벵에돔이 낚이는 상황이며 예년과 달리 긴꼬리벵에돔 씨알이 굵게 낚이고 있다. 긴꼬리벵에돔은 44~47cm급, 일반 벵에돔은 40cm 초반급이 주류라고 한다.
김광우 씨는 “자리돔 성화기 심해지면서 늘 낚시인들로 붐비는 본섬 포인트에서의 낚시는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다. 가급적 독립된 여나 간출여에 오르는 게 벵에돔을 만날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해왔다. 김광우 씨가 제시한 여 포인트로는 홍합여, 넓은여 간출여, 동모 간출여 같은 포인트들인데 이런 특급 포인트들은 늘 포인트 경쟁이 심하다는 게 단점이다.      

문의 서귀포 광명낚시 064-732-7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