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성암지
바람 부는 날에바람 맞받는 곳으로 가라
허만갑 기자
나는 봄이 오는 것을 바람으로 느낀다. 촉촉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 2월이라도 봄이요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3월이라도 겨울이다. 봄에 부는 바람은 갓 녹은 얼음물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영상으로 따뜻해진 한낮에 부는 바람은 1~3도에 불과한(얼음판 밑의 수온보다 얼음이 녹은 직후의 수온이 낮다.) 해빙기의 수온을 단숨에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붕어도 나처럼 봄바람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봄에 낚시를 해보면 바람 없는 날보다 바람 부는 날 입질이 활발했고, 바람을 피한 잔잔한 구간보다 바람을 받아 파도가 이는 구간에서 큰 고기가 잘 낚였기 때문이다.
봄낚시와 바람에 관한 나의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 진주에 살던 나는 해마다 사천 두량지에서 첫 물낚시를 했다. 21만평의 두량지는 서부경남에서 가장 큰 저수지여서 봄이면 부산에서 단체출조를 많이 왔다. 번쩍거리는 카본낚싯대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낚시인들로 북적이던 두량지 상류는 오후 2시쯤 낚시버스가 돌아가고 나면 한산해졌다. 그때쯤 어김없이 강한 바람이 제방 쪽에서 불어오고, 상류 논둑 밑에는 물결이 일고 물거품이 날렸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 처음 ‘떼고기’를 만났다. 파도가 논두렁을 때려서 누렇게 흙물이 진 곳으로 뼘치, 준척 붕어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어 던지는 족족 찌를 둥둥 띄웠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렁이는 바람받이로 가서 종종 재미를 보았다. 낚시춘추 기자가 된 후 94년 가을에 대구 낚시인들과 의성 도원지에서 밤낚시 수온변화를 측정해본 적 있는데, 그날도 초저녁에 남동풍이 불었고 바람을 맞받는 북쪽 연안의 수온이 가장 많이 올랐으며 초저녁 입질은 북쪽 바람받이에서 집중되었다.
▲성암지 우측 골 탑곡리. 바람에 물결이 이는 남쪽 연안에서 보트낚시를 하고 있다. 탑곡리의 봄낚시는 바람을 등지는 북쪽 연안보다
바람을 맞받는 남쪽 연안의 조황이 뛰어나다. 다만 맞바람받이라서 낚시하기가 불편하지만 보트의 경우 바람을 등지고 연안 쪽으로
낚시할 수 있어 편리하다.
▲"성암지 붕어, 언제 봐도 일품입니다." 수원낚시인 박경환씨가 2월 21일 낚은 33cm, 34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성암지 붕어는 체형이
탄탄하고 힘이 대단히 좋다.
▲“찌를 몸통까지 올리던데요.” 보트맨피시50 밴드 조승휘 회원이 오후 4시에 올라온 36cm 붕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미끼는 지렁이.
봄바람은 물속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런데 대다수 낚시인들은 바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면 붕어가 바람을 피해 숨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바람을 등지고 낚시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강풍이 터지면 낚시를 포기했다.
그러나 바람은 겨울을 제외하면 입질의 촉매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바람은 수온을 떨어뜨리고 물색을 맑게 하여 낚시의 악재가 되지만 봄에는 정반대다. 봄바람은 수온을 올리고 물색을 흐리게 만들어 붕어의 활성을 끌어올려준다. 한마디로 수온보다 기온이 낮을 땐(겨울과 늦가을) 바람이 찬 기운을 물속에 불어넣고, 수온보다 기온이 높을 땐(봄과 초여름) 바람이 따뜻한 기운을 물속에 불어 넣는 것이다.
바람은 수온 외에도 산소량을 높여 물속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물결이 일면 공기와 수면이 접촉하는 면적이 커져서 산소가 더 잘 녹아든다. 뜨거운 여름철, 바람이 불 때는 붕어들이 정신없이 낚이다가 바람이 그치면 입질도 뚝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용존산소량과 연관 있을 것이다.
바람이 입질을 촉진하는 현상은 이번 성암지 취재에서도 경험했다. 서산에서 물낚시가 가장 빨리 시작되는 성암지는 올해 역시 2월 중순부터 마릿수 호황을 보이고 있다. 나는 2월 14일, 20~21일, 26~27일 세 번 연속 성암지에서 보트낚시를 했는데, 21일과 26일은 조황이 좋았고 14일, 20일, 27일은 조황이 나빴다. 그 차이는 바람이었다. 조황이 좋은 날은 오전부터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렁였고, 조황이 나쁜 날은 하루 종일 바람이 거의 없었다. 내가 성암지를 찾지 않은 날의 조황도 주변 낚시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바람이 불어서 쌀쌀한 날 조황이 좋았고, 바람 없이 뿌옇게 온화한 날은 이상하게 입질이 뜸했다”고 했다. 이런 결과는 ‘아직 추운 초봄에는 바람이 없어 잔잔한 날 낚시가 잘 될 것’이라는 통념과 배치되는 것이다.
성암지의 초봄 호황 포인트를 보아도 바람을 주로 맞받는 곳이다. 도당리권에선 동쪽 연안, 탑곡리권에선 남쪽 연안이 그곳이다. 탑곡리의 경우 낚시인들은 바람을 등지고 차가 진입하기 편한 북쪽 연안에 많이 앉지만 남쪽 연안(양수장 주변)의 조황에 크게 못 미친다. 취재당시에도 남쪽 연안에 앉아서 찬바람을 맞아가며 분투한 낚시인들이 좋은 조황을 거두었다.
입질시간대도 바람과 관련이 있다. 통상 바람이 없는 아침시간에는 동튼 직후부터 8시까지 반짝 입질이 들어오고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에 한 차례 소나기 입질이 들어오는데, 이때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어야 붕어들이 많이 움직인다. 만약 10시 전후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이 피딩타임은 실종될 공산이 크다. 그 다음 입질시간은 오후 3시부터 해 질 무렵까지다. 이때는 70% 이상 바람이 부는데 마릿수는 오전보다 적지만 씨알은 더 굵다. 허리급이나 4짜는 이 시간대에 낚이는 확률이 높다. 다만 바람이 너무 세면 파도가 높아서 찌를 보거나 낚싯대를 투척하기는 어렵다.
오후낚시가 힘들 정도로 강풍이 분 날은 오후 6시 전후에 바람이 자면서 해거름에 폭발적인 입질을 보이는 수가 많다. 이런 날은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도 붕어들이 돌아다니면서 간간이 입질하며, 밤에 입질하지 않더라도 다음날 아침에 바로 입질이 시작될 확률이 높다.
▲탑곡리 남쪽 연안의 낚시인이 한낮에도 계속 입질을 받아내고 있다. 맞바람을 막기 위해 텐트 지퍼를 허리까지 올렸다.
▲통통하게 살찐 성암지 봄붕어들. 29~35cm 씨알이다.
▲노을이 물든 성암지.
▲행정구역은 운산면 소중리에 속하는 '탑곡리 남쪽' 연안.
북풍보다 남풍이나 서풍이 불어야 호재
그런데 바람에 의한 붕어 활성 상승이 모든 낚시터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의해 물결이 일고 흙물이 일어나는 해안 평지지나 대형 간척호, 댐에서는 활성도 상승효과가 뚜렷하지만, 바람만 불고 물결은 일지 않는 소류지에선 그 효과가 약할 수 있다.
또 바람의 방향도 중요하다. 따뜻한 남풍이나 서풍이 불어야 좋다. 그 대신 차가운 북풍이 불면 해안 평지지라도 물색이 맑아지면서 입질이 뚝 끊기는 수가 있다. 몇 년 전 대호 출포리에서 전날까지 잘 낚이던 붕어가 북서풍이 불고 난 다음날 완전히 입을 다문 사례도 경험했다. 바람에 비가 섞이는 것도 좋지 않다. 날은 화창하고 바람만 불어야 좋다. 비바람은 한여름이 아닌 한 붕어낚시의 악재다.
그러나 대부분 바람은 봄낚시의 호재로 작용하며 그것을 잘만 이용하면 더 흥미진진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올봄 낚시를 떠날 때는 두 가지만 기억하자.
▶바람이 없는 날보다 바람이 부는 날 낚시가 잘 된다.
▶바람을 등지는 곳보다 (불편하긴 하지만) 바람을 맞받는 곳에서 더 잘 낚인다.
성암지 조황문의 서산 일번지낚시 010-6505-7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