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낚시 주유기
붕어 찾는 유랑길
신안에서 태안까지
얼음낚시 시즌이 마감되고 해빙기에 접어들자 중부지방에는 낚시가 어설픈 시기가 되어 버렸다. 낚시꾼이 붕어에 대한 갈망을 쉽게 극복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며칠 동안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은근히 마음은 들뜨기만 하여 남녘의 봄붕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나선 길이 기나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장재혁 객원기자·천류 필드스탭
▲비늘을 반짝이며 몸을 뒤집는 섬붕어들. 이놈들이 눈에 자꾸 아른거려 나는 남녘으로 달려가곤 했다. 사진은 신안 도초도 도락수로에서 낚은 붕어들.
낚시꾼이면 누구나 꿈꾸는 곳, 신안 섬붕어낚시터의 대명사 격인 안좌도-팔금도-암태도-자은도부터 둘러보기로 하였다.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40여분 배를 타고 암태도 신석항에 닿았다. 우선 자은도와 안좌도까지 이동하며 둘러보았다. 지난해에도 강수량이 적어 저수지와 수로는 물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올해는 가뭄이 더 심하여 바닥이 드러나 쩍쩍 갈라진 곳도 있었다. 남쪽 섬지방은 겨울철에도 시금치나 파, 마늘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연중 농업용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렇게 가뭄이 지속되자 가뭄해소 대책 방안으로 정부 국비를 지원받아 한국농촌공사가 담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중장비로 마른 저수지 바닥을 파헤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낚시는 둘째 치고 농민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물사정이 최악이니 낚시여건도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 바람을 피해 팔금도의 한 소류지에서 밤낚시를 하였지만 불어 닥치는 강풍에 낚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해상기상도 악화된다는 예보가 있어 다음날 첫배로 서둘러 철수해야만 했다.
▲도락수로. 6~9치급의 마릿수 손맛을 보면서 섬낚시의 즐거움에 빠졌다.
안좌도에서 비금도 도초도로
나는 목포에서 다시 2시간 뱃길을 따라 비금도로 들어갔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서로 왕래를 할 수 있게끔 연도교로 이어져 있다. 선착장을 벗어나 비금도의 수로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바람이 쉼 없이 불어오고 있어서 포인트 선정이 만만치 않았다. 다시 도초도로 건너가 그쪽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섬 규모가 작아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초도는 둠벙이나 저수지보다 수로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섬이었다. 일단 바람을 덜타고 물색이 좋은 도락수로에 자리를 정했다. 수로 옆 염전의 소금창고에서 소금 운반작업을 하던 현지민에게서 불법 그물꾼에 대한 정황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물꾼들은 주말보다는 평일을 기해 인적이 드문 밤시간을 틈타 그물을 쳐놓았다가 해뜨기 전 새벽에 그물을 걷어 통째로 차에 실고는 첫배로 섬을 나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물꾼들이 낚시방송 등 낚시언론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어 이런 불법 어로행위를 한다고 했다. 외래어종의 유입으로 저수지와 강계의 우리 어종들이 줄어드는 시점에 불법 그물꾼까지 설쳐대는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이틀간 도초도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도락수로와 도화수로 두 곳에서 6~9치급으로 마릿수 손맛을 보았지만 마음속엔 불법 그물질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가 남아 철수하는 발걸음을 무겁게만 하였다.
▲도초도에서 첫날 찾은 도화수로. 도초도는 저수지나 ▲압해도의 도로변에 있는 무명 둠벙. 붕어 자원은 엄청
둠벙보다 수로가 더 많다. 많은 곳이지만 아쉽게도 사유지다.
정보 없이 들어간 노화도에서 실망만 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완도 노화도. 얼마 전 전복사업을 하는 지인이 노화도에 드나들면서 유심히 봐둔 수로와 둠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통화를 마친 후 인터넷을 통해 노화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지만 노화도 붕어낚시에 대한 자료는 충분치 않았다.
내심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1월 31일 완도로 출발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평산가인 회원인 오길현, 김상욱씨와 합류하여 아침 7시 첫배를 타고 노화도로 출항. 수평선이 시원스레 펼쳐진 완도 앞바다는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안 앞바다와는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40여 분의 뱃길에 드디어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하였고 목적지인 수로로 향하였다. 노화도의 수로는 충도리와 포전리, 그리고 등산지에서 내려오는 도청리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충도리 수로에 도착하니 50cm 정도의 수심에 수초 여건과 물색은 그런대로 좋아 보였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 수초채비로 이동을 하며 낚시를 시작했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무소득. 그때 수로에서 특이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정사각형 철제 앵글에 10마력 이상 되어 보이는 수중펌프들이 수로마다 있었다. 저수지의 물을 수로로 배수하면 이 수중펌프를 가동시켜 주변 농지에 물을 공급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저수지나 수로의 수위는 안정적일 수 없으리라. 붕어의 성장여건으로는 좋지 않았다.
지도에 표시된 노화도의 저수지는 5곳, 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동고지는 배수가 되어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석중지는 트랙터로 연을 채취하기 위해 바닥을 긁어 놓은 상태였고 대형 어망으로 물고기를 전부 잡아내 저수지 곳곳에는 7치급 붕어의 사체가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등산지와 구석지는 저수율이 20~30%였고, 그나마 양화지는 70%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물색이 유리알처럼 맑았다.
또 둠벙도 대부분 개인 사유지로 낚시가 불가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노화도의 붕어낚시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았던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 일행은 더 이상의 탐사가 무의미함을 깨닫고 육지로 돌아 나왔다.
노화도에서 나온 후에도 압해도, 무안 등지를 돌아보며 여러 낚시터를 찾았지만 시기적으로 아직 이른 감이 있었는지 몇몇 낚시터에서 낱마리 소식이 들려올 뿐 큰 조황을 만날 수는 없었다.
▲압해도에서 둠벙낚시 중 낚은 4짜급 붕어. 조황이 쏠솔한 둠벙들이 꽤 있었다.
정작 봄붕어는 가까운 데 있었네
그토록 바라던 봄붕어 소식은 호남이 아니라 가까운 충남에서 들려왔다. 평산가인 한기룡(닉네임 비에이) 회원이 “태안 수룡지에서 붕어가 꽤 낚이고 있다”고 해서 2월 7일 평산가인 회원 7명과 수룡지를 찾았다. 수면적 15,825㎥의 저수지로 어자원이 풍부해 수도권 낚시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저수지다. 3년 전 봄 이곳에서 월척을 비롯해서 7~8치 마릿수 재미를 본 경험이 있었다.
수룡지에 도착해보니 물색도 좋고 대를 담그면 금방이라도 붕어가 나올 것 같은 포인트가 제방부터 상류까지 즐비하다. 삭은 뗏장수초와 부들이 깔려 있어서 포인트 선정에 큰 어려움이 없다. 배스와 블루길이 서식하고 있지만 아직은 큰 성화를 부리지 않는다고 했다.
부들이 삭아 내린 중상류 홈통지역에 자리를 정하고 서둘러 수초 사이에 채비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대편성을 하는 중에도 입질이 들어왔다. 잠시 한 눈 팔고 있는 사이에 챔질타이밍을 놓치기도 하였다. 한 마디쯤 올리고 옆으로 끌고 가는 입질에 챔질하니 7치 붕어가 첫수로 올라왔다. 붕어의 활성도가 좋아서 여기저기서 붕어가 올라오자 함께한 회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낚시에 몰두했다. 저녁 무렵에 소나기 입질이 이어지더니 밤낚시를 위해 찌불을 밝히자 거짓말처럼 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밤 8시반경 한기룡씨 쪽에서 고요한 정적을 깨는 챔질 소리와 철퍼덕거리는 물소리가 나더니 8치 붕어를 낚았다고 했다. 그 붕어가 이날 밤낚시에서 유일한 조과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새벽이 되자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면서 일부 연안의 수면은 살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다시 입질이 시작되었다. 잠깐 사이에 7치급으로 3수를 추가. 그러나 해가 뜨기만 고대했는데 막상 해가 뜨자 오히려 입질이 뚝 끊겼다.
중류 연안에는 언제 왔는지 많은 낚시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살림망 속에는 6~8치 붕어가 2~3수씩 담겨 있었다. 서울에서 온 이수형씨는 “매년 이맘때면 이곳을 즐겨 찾는다. 간혹 월척과 함께 평균 7~8치급으로 20여수를 낚곤 했는데 올해는 조황이 부진한 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저수지 왼쪽 연안에는 낚시꾼들이 전혀 보이질 않기에 현지꾼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쪽에선 붕어 입질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유가 궁금하여 그곳엘 찾아가 보았지만 물색이나 수초여건 등 특별히 다른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바지장화를 착용하고 물속에 수초낚시를 하는 태안꾼은 “거의 매일 수룡지에서 낚시를 하는데 보통 20수 이상 낚아낸다”고 하였다. 수룡지는 농민들과의 마찰이 좀 있다. 물과 논이 맞닿아 있어 논둑에 앉아 낚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과 부딪혀 가며 낚시해봐야 서로 마음만 상하고 낚시도 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늘 농민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너그럽고 여유 있는 낚시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룡지는 1만원의 입어료를 받는 유료터로 운영되고 있다.
▲수룡지의 밤낚시 조과를 보여주고 있는 신동화, 허명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