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35

물의 전기전도도

전기로 수질을 측정할 수 있다

김범철 강원대학교 환경학부 교수

전류계는 전선을 통하여 흐르는 전류를 측정하는 기기인데, 이 전류계가 수질을 측정하는 데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두 개의 전극을 물에 넣고 전극 사이의 전류를 측정하여 전기저항을 측정하는 것인데 ‘전기전도도계’라고 부른다. 전류는 전기저항에 반비례하므로 전기저항의 역수를 전기전도도라고 정의하였다. 즉, 전기저항이 작을수록 전기전도도가 높은 것이다. 전기전도도는 측정기를 물속에 담그기만 하면 곧바로 측정되므로 측정하기가 매우 쉬워 수질을 조사할 때 항상 기본항목으로 조사한다. 측정기의 가격도 싸기 때문에 수질측정기에는 대개 부수적으로 전도도계가 포함되어 있다.
전기를 이용하여 수질을 측정하는 원리는 순수한 물에서는 전류가 잘 흐르지 않지만 불순물이 많이 함유되면 전류가 잘 흐른다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전류는 전자가 이동하는 현상인데 고체이건 액체이건 전류가 흐르기 위해서는 전자를 잘 주고받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 자유전자를 가진 금속이나 이온이 존재하여야 전류가 잘 흐를 수 있는데, 순수한 물에는 이온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류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속에 이온이 많아지면 물은 전류가 잘 통하는 물질로 변한다. 물에 녹아 있는 물질은 대부분 이온이므로 물에 무언가 많이 용해되어 있다면 전기전도도가 높아진다. 가정하수나 공장폐수 등의 오염수가 유입하면 반드시 전기전도도가 높아지게 되므로 이를 이용하여 수질오염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수질평가에 흔히 사용하는 BOD, 인(燐)의 농도, 등의 자료를 전기전도도와 비교해 보면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즉, 분석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걸리는 수질 항목을 측정하는 대신에 전도도를 측정하면 수질을 어느 정도는 추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염된 물일수록 전류가 잘 통한다
물론 수중의 이온은 자연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빗물에는 이온의 양이 매우 적지만 토양을 통과하는 동안에 암석과 토양성분이 용해하여 이온이 증가한다. 화강암보다는 석회암이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석회암지대에서 전도도가 더 높다. 전기전도도의 단위로는 전기저항(Ω)의 역수인 마이크로 지멘스(μS/cm)를 사용하는데 빗물이나 설악산의 청정 계곡수는 20 정도의 낮은 전도도를 보이다가 하류로 내려가면서 점차 증가한다. 북한강의 상류에 위치한 소양강의 유역은 화강암이므로 전도도가 우리나라의 강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60 정도를 보이는 데 비하여 석회암이 많은 남한강의 전도도는 약 200에 이른다. 석회암에서 칼슘이온이 많이 용해되는 것이 자연적인 전도도 증가의 주원인이며, 지하수에서는 지표수보다 전도도가 더 높다.
가정하수나 공장폐수에서는 전도도가 1,000 이상으로 높아지므로 하수의 유입이 많은 곳에서는 전도도가 남한강의 석회암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서울의 안양천에서는 약 600의 전도도를 보이며, 낙동강 하류에서도 300~800으로 높아진다. 필자가 관측한 하천 가운데 가장 높았던 곳은 염색공장이 많이 위치한 의정부의 신천이었는데 약 3,000의 높은 전도도를 보여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다.

▲안양천에서 관측된 전기전도도 변동 사례. 강우 시에는 빗물로 희석되어 전도도가 낮아지며, 전도도가 급증하는 현상은 오염물의

  유입으로 추정된다.

바닷물은 민물보다 수백 배 전도도 높아
하천의 전도도를 관측하다가 갑자기 평시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폐수의 방류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요즘은 전도도계에 데이터 기록장치가 내장된 것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하천에 넣어두면 연속적으로 전도도를 측정하여 기록해 준다.
전기전도도계는 정수기에서 정화된 물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정수기는 미세한 구멍이 있는 플라스틱 막을 사용하여 물 이외의 물질들을 제거하는 기기인데 필터의 수명이 다하여 여과를 하지 못하면 물속에 이온의 양이 많아지고 전도도가 높아진다. 그러므로 정수기에 전도도계를 설치하고 전도도가 증가한 것을 확인하여 필터를 교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도도가 높더라도 오염과 무관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닷물이 섞여 있는 경우이다. 바닷물에는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이 많이 있어 전류가 아주 잘 흐른다. 바닷물의 전도도는 5만에 이르므로 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해수를 조사하는 기기로서 염분측정기가 있는데 이는 담수에서 사용하는 전기전도도계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즉 전류를 측정하여 이를 염분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식품의 염분을 측정하는 염분계도 전기전도도계와 동일한 원리를 사용한다. 두 개의 전극을 음식에 꽂으면 전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고 이를 측정하여 염분으로 환산한다. 물론 식품의 전도도는 하천수에 비하여 월등하게 높기 때문에 고농도용인 염분계로 하천 수질을 측정할 수는 없다.
전기전도도계는 휴대와 측정이 간편하므로 우리 동네 하천의 오염물 유출을 감시하는 시민환경감시활동에 아주 적합한 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