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34

둠벙의 생태적 가치

큰 저수지엔 없는 희귀생물 둠벙에 많이 서식

김범철 강원대학교 환경학부 교수, 전 한국하천호수학회장

근래 둠벙의 생물상을 조사한 생태학자들에 의해 둠벙의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둠벙이란 작은 웅덩이들을 말하는데 주로 농경지역에 물 대기에 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샘이 솟는 곳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실개천을 끌어다 물을 대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늘 물이 고여 있어 언제든 쓸 수 있기 때문에 비상용 수자원인 셈이다. 강변에 물이 질척하게 잘 고이는 움푹한 지형에 농사짓기에 적합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도 있고, 논의 한 귀퉁이를 파서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것도 있다.
둠벙의 생물상 조사결과를 보면 멸종위기에 있는 수서곤충이 발견되기도 하여, 큰 저수지나 강과는 다른 독특한 생물상을 보이거나 희귀생물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예도 많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둠벙의 생물다양성이 높은 이유는 물이 마르지 않고 수위변동이 작기 때문이다. 갈수기에 물이 빠지는 인공저수지나 하천에서는 수위변동이 심하여 수변에 식물이 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둠벙에서는 수변이 수생식물로 채워지고 수서곤충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진다. 빼곡한 수생식물은 이를 먹이로 하거나 은신처로 삼는 작은 동물들에게 살기 좋은 서식처이다. 큰 저수지에서는 배스나 블루길 등의 강력한 포식자가 많기 때문에 생존하기 어려운 대형 수서곤충들도 이처럼 작은 못에서는 살아남기 쉽다. 물자라, 물장군과 같은 수서곤충이 둠벙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논 옆의 둠벙은 작은 동식물의 좋은 서식처이다

둠벙의 연결은 논에 사는 동물의 생존에 좋은 조건
논은 수서곤충과 어류 등 여러 수생동물이 살기 좋은 서식처인데, 논에 얼마나 다양한 동물이 많이 사는지는 둠벙의 유무가 큰 영향을 미친다. 연구결과를 보면 둠벙이 있는 논에서는 둠벙이 없는 논과 비교하여 세 배나 더 많은 수생동물이 산다는 보고가 있다. 그 이유는 논에는 물이 항상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가을이 되면 물을 빼서 마르기 때문에 둠벙이 없이는 동물들이 겨울을 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둠벙이 있으면 물고기나 수서곤충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월동할 수 있고 건조를 피하여 생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둠벙이 논과 연결되어 있으면 논의 생태적 가치도 높아진다. 논의 물이 마르는 시기에 동물이 둠벙으로 피신하였다가 물이 채워지면 다시 논으로 들어가 살 수 있어 생물의 이입이 쉽기 때문이다. 농어촌공사의 연구에 의하면 논에 사는 미꾸라지는 물이 마르면 논과 연결된 둠벙으로 찾아가 월동하고 물이 다시 채워지면 논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논에 사는 동물의 서식처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논의 일부를 둠벙으로 남겨 두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

둠벙에 의한 지하수 재충진과 수질정화 효과
둠벙은 지하수의 고갈을 막는 좋은 방법으로도 인정되고 있다. 근래 지하수를 농업용으로 많이 사용하다보니 지하수위가 감소하여 취수가 어려워지거나 갈수기에 하천이 마르는 건천현상이 나타난다. 제방건설에 의해 하천의 물이 빠르게 하류로 유출되는 것도 하천바닥으로 침투하는 시간을 감소시켜 지하수 감소의 원인이 된다. 도시지역에서는 도로포장과 건물에 의해 지표면에서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면이 늘어나는 것이 지하수 감소의 주원인이다.
지하수의 고갈을 막으려면 지표면에서의 침투를 증가시켜 지하수를 재충진하여야 하는데 둠벙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시지역이건 농촌지역이건 웅덩이를 많이 만들어 주면 지표의 빗물이 유출되는 것을 늦추고 재충진을 늘릴 수 있다. 침투가 잘 되는 모래땅에서는 웅덩이에 물이 고이지는 않고 일시적으로만 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될 수도 있지만 빗물이 침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지하수 재충진에 기여한다.
둠벙은 수자원의 확보뿐 아니라 수질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축산분뇨나 퇴비, 농약이 유출되는 농촌지역에 둠벙을 만들어 주면 비가 내릴 때 유출되는 오염물들이 둠벙에 침전하여 정화되며, 바닥으로 스며들어간 물은 토양에 의해 여과되어 하류 하천의 수질이 좋아진다. 특히 농약성분과 호수 녹조현상의 원인이 되는 인성분은 토양이 잘 흡수하므로 농경지 유출수를 웅덩이에 가두고 토양으로 침투시키면 농약과 인이 거의 제거된다. 토양을 통과한 지하수는 다시 지표로 용출되어 하천수가 되므로 토양정화 덕분에 좋은 하천수를 얻게 된다. 이는 에너지와 약품을 쓰지 않는 수질정화방법이므로 값비싼 전기를 쓰는 수처리시설보다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대책이다. 오래 사용하다가 웅덩이가 메워지면 바닥에 쌓인 뻘은 퍼내어 비료로 사용하면 된다.
둠벙에 물을 가두어 자연적으로 정화하는 효과를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의무적으로 웅덩이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농장, 학교부지, 대형 주차장, 비행장 등의 빗물이 유출되는 곳에는 면적의 일정 비율을 웅덩이로 만들어 유출수가 이곳을 거치면서 정화되도록 한다. 수변식생을 잘 가꾸고 물새들도 날아든다면 공원으로서의 조경 가치도 높다.

▲ 둠벙에서 흔히 나타나는 동물.(알을 등에 지고 다니는 물자라와 미꾸리)

농촌에 둠벙 만들기 운동이 필요
농촌지역의 하천들이 퇴비와 비료에 의해 부영양화 현상이 나타나 부착조류가 과잉 번성하고 있는데 둠벙을 많이 만들어 주면 수질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지하수도 확보하고 생태계와 수질도 개선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둠벙을 많이 만드는 운동을 전개하기를 제안한다. 동네 꼬마들의 낚시터가 된다면 이 또한 반가운 보너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