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척의 以心傳心
3박4일 꼬박 밤을 샜건만…
어쩌란 말이냐, 만천지 붕어야
이종일 객원기자
경북 의성군 금성면 만천리에 있는 만천지는 2만평 규모의 평지지다.
가물치양식장을 하다가 10년 전에 개방된 후 매년 4짜 붕어를 토해내면서
지금은 의성지역 최고의 대물터로 자리매김했다.
▲부들군락과 마름이 어우러져 자라있는 만천지 상류. 좌측 도로변까지 수초 포인트가 형성되어 있다.
척월님, 때가 됐는데 안 오시는교? 고기 나오는 곳 있으니 퍼뜩 내려오소.” 무뚝뚝하지만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구미의 김갑성씨다. 작년에 그의 소개로 구미 배나무골소류지에서 월척붕어를 마릿수로 뽑아내고 작년 7월호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장소는 의성 만천지였다. “작년 11월에 만천지에서 붕어 치어를 미끼로 사용해 4짜를 낚아냈고, 올해는 어제(5월 18일)부터 이틀째 만천지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33cm, 36cm 붕어를 낚았고 옆의 서울꾼 한 분도 대형붕어 3마리를 잡아놓고 있다”고 한다. 무엇을 더 망설이랴! 마침 연휴도 끼어있어 3일 일정을 잡고 5월 20일 의성으로 향했다.
“고기 나오는 곳 있으니 퍼뜩 내려오소”
강한 비늘에 먹물을 뒤집어쓴 듯 거무튀튀한 의성 붕어가 나를 반겨주는 상상을 하며 중앙고속도로를 달렸다. 만천지는 의성I.C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낚시터에 도착해보니 10여개의 파라솔이 눈에 띈다. 상류 그늘에서 쉬고 있던 김갑성, 김기한씨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상류 포인트는 산그늘이 드리워져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상류의 평균 수심은 70~80cm로서 부들 군락이 마름과 함께 연안을 따라 건너편 도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찌를 세우기 위해서는 수초제거작업이 필요했다. 상류 집 앞 작은 다리 주변이 물 유입구 역할을 하면서 물골까지 있는 1급 포인트였다. 50~70mm 비가 내려준다면 오름수위 특수도 기대되는 상황. 김갑성씨는 ‘내가 이틀 동안 낚시한 자리라 작업할 필요도 없으므로 그냥 앉아서 낚시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그는 1.8칸부터 3칸대에서 입질이 들어오니 짧은 대 위주로 펴라는 귀띔을 해주고는 우안 하류의 생자리에 앉았다.
굵은 새우를 골라 10대를 깔았다. 초저녁엔 예신 없이 갑자기 솟구치는 입질을 챘더니 6치 붕어가 올라왔다. 밤 11시경 멀리 김갑성씨의 자리에서 작은 불빛이 몇 번 번쩍였다. 김갑성씨가 고기를 안고 오더니 “한 마리 했심더. 새우로”하고 말한다. 짧은 말이었지만 흥분된 목소리다. 수건에 싼 물체를 쑥 내미는데 어둠 속에서도 탄성이 나올만한 크기였다. 계측해보니 37.5cm였다. 자기 자리는 살림망을 담글 자리가 없다면서 내 자리의 살림망에 고기를 넣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 이를 악물고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샜지만 초저녁에 낚인 6치 붕어 외엔 입질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최상류 물골자리에 대를 편 황정수씨 자리에 모여 밤낚시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데 “딱”하는 소리와 함께 황정수씨 낚싯대 하나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달려갔다. 붕어가 이미 부들을 감고 난 뒤였지만 침착하게 당기니까 수초 속에서 32cm 붕어가 끌려나왔다. 그는 ‘간밤에 달았던 굵은 새우에 입질했네요. 찌 올라오는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하면서 아쉬워했다.
▲김갑성씨가 새우 밤낚시로 올린 37.5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생자리 개척한 김갑성씨만 37.5cm 붕어
만천지엔 꾼들에게 사랑을 받는 구멍가게를 겸한 작은 식당이 있다. 세면까지 할 수 있어 일명 만천휴게소라 불린다.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맛깔스러운 반찬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방 중간의 생자리가 자꾸 눈에 들어와 결국 자리를 옮겼다. 부들을 제거하고 마름이 가득한 물속은 수초갈퀴를 달아 수십 번의 헛챔질을 해서 찌가 설 공간을 만들었다. 겉보리까지 뿌려 모든 작업을 마친 채 이틀째 밤을 맞았다. 어제보다 더한 기대감.
밤 9시경 우측 30m 거리에 앉은 김갑성가 거친 물소리와 함께 33cm 월척붕어를 낚아냈다. 10명이 낚시하고 있는데 왜 저 자리에서만 붕어가 나오는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새벽 2시경 상류 도로 아래에서 엄청난 물소리가 저수지에 울려 퍼졌다. ‘만천지 귀신’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기한씨 자리다. 일주일째 만천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그가 어떤 놈을 낚았는지 궁금했다. 내 자리엔 찌를 두 마디 올려놓고 더 이상 솟지 않는 입질이 4~5번, 이런 입질은 징거미의 소행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 때문에 미끼를 싱싱한 놈으로 바꿔가면서 입질을 기다렸다. 새벽에 다시 김기한씨 자리에서 엄청난 물소리가 났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모두 김기한씨 자리로 다가가자 김씨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45cm 잉어 두 마리를 낚았어요”하고 말해 모두 박장대소했다. 혹시나 해서 채집된 참붕어 미끼를 썼더니 잉어가 물더란다.
3일째 되는 날엔 비가 내렸다. 저녁식사를 할 때 농담조로 “김갑성씨를 빼고 우리끼리 낚시를 해봅시다. 그러면 누군가 한 마리는 잡을 것이 아닙니까”하고 제안하자 모두 박수를 쳤다. 이 말이 효력이 있었는지 이 날 김갑성씨는 꽝을 치고 다른 꾼이 월척을 낚아냈다. 나는 끝내 월척을 낚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비를 맞으며 철수를 서두르는 나를 보고 박태하씨가 “시간 되면 또 오이소. 붕어가 척월님을 외면하지 않는 곳으로 안내하지예”하고 위로를 해준다. 비록 대물붕어의 철저한 외면 때문에 빈손으로 철수해야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던 3박4일이었다.
▲ 먹물을 뒤집어쓴 듯 거무튀튀한 체색 때문에 강인한 ▲ 수초작업을 하고 있는 박태하씨. 2.5칸대 전후 거리
인상을 풍기는 만천지 월척 붕어. 부들군락이 자라있어 짧은 대에 입질이 주로 들어왔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의성I.C를 빠져나와 우회전해 봉양면소재지를 거치면 삼거리. 안동 방면으로 우회전해 9km 가량 가면 안동·비봉 갈래길에 이르고 우회전해 5분여 가면 다시 갈래길이다. 좌회전해 1km 가량 가서 건널목을 건너 만천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2km 가량 가면 제방에 이른다.